백종원 대표. 이제는 좀 잠잠해진 것 같은데 한동안 열기가 뜨겁다 못해 대국민 사기극이니 어쩌니 미디어를 장악했었죠.
빽햄, 밀키트부터 레시피 도둑, 원산지 허위표기 등등 문제가 정말 많았지만요. 여기서 형사입건까지 된 원산지 파트를 제외하면 사실 법적으로 처벌 받거나 제재를 받을 수 있는 사안은 거의 없었습니다. 대부분 ‘도덕적 비난’의 영역에 가까웠죠.
오늘 주제가 더본코리아라는 건 아니고요. 사실 이런 사례는 많습니다. 법적으로 문제 되진 않지만 도덕적으로 지탄 받는 일들. 전략이 될 수도 있지만 밝혀졌을 땐 기만, 나아가 사기로 여겨질 수도 있는 행동들 말입니다.
그럼 여기서 질문 하나 드려볼게요. 분유 먹는 아이, 모유 먹는 아이 둘 중에 누가 더 건강할까요? 혹시, “유럽의 건강한 아기들은 모유 대신 분유를 먹는다”는 말을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1970년대 아프리카, 실제로 글로벌 메가 식품 기업이 내건 광고 문구인데요.
세계 최대 식품회사 중 하나인 네슬레. 아프리카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무료로 분유 샘플을 뿌려대는 마케팅을 합니다. 보통 무료로 샘플이나 체험을 제공하는 이유는 씨앗을 뿌리기 위함인데요. 시딩이라고들 하죠. 체험자가 우리 제품을 마음에 들어 하면 다음번에 재사용, 구매로 이어지도록 유도하는 투자식 마케팅 방법입니다.
그런데 이때 네슬레가 뿌렸던 씨앗. 철저히 설계된 일종의 사기극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약1,100만 명의 아이가 사망하게 됐고요.
세상의 모든 브랜드 이야기
오늘 주제는 한 기업의 선택이 대륙 전체를 망가뜨려버릴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네슬레입니다.
영상으로도 준비 되어 있으니 아래 링크를 확인해주세요!

https://youtu.be/QOnVP2s1jIM
아프리카로 눈 돌린 네슬레
ⓒ 위키백과
서구의 베이비붐이 끝난 1960~70년대에 접어들면서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출생율 감소와 모유 수유 장려 움직임으로 분유 판매량이 정체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네슬레의 주력 제품은 분유였는데요.이러한 베이비 버스트 현상은 큰 타격이 됐습니다. 어쩔 수 없이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했기에 미개척 시장을 해외로 돌렸죠. 특히 출산율이 높지만 경제 형편이 어려운 아프리카와 아시아, 중남미를 주목했는데요.
이 중 가장 문제가 됐던 건 아프리카. 네슬레는 아프리카 시장 공략을 위해 적극적인 마케팅 공세에 나섭니다. 아프리카 각지의 병원과 마을을 돌며 무료 분유 샘플을 대량으로 나눠주기 시작했어요. ‘유럽의 토실토실한 아이들은 모두 분유를 먹고 자란다’는 카피를 메인으로, 아프리카 엄마들의 관심을 끈 건데요. 이때 판촉 직원들 복장을 의사나 간호사 복장으로 입혀서 밀크 너스(milk nurse)를 만들기도 했죠. ‘분유를 먹이면 아이들이 영양 부족 없이 잘 자란다’고 설득하면서요.
그리고 당연하게도 경제 사정상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기 힘들었던 많은 아프리카 어머니들이 공짜로 얻은 분유에 의존하게 됩니다. 저기 잘 사는 나라에서 온 의사 간호사들이 모유보다 분유가 좋다고 하는데 심지어 공짜로 주니까 거부할 이유가 없었거든요. 하지만 이 짧은 호황의 이면에는 끔찍한 대가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분유가 불러온 비극
어느 날, 아기들이 하나 둘 심한 설사와 구토 증세를 보이더니 급기야 고열에 시달리다 사망하는 사례가 나타나게 됩니다.
이게 당연한 게, 분유를 먹일 때 가장 중요한 건 깨끗한 물과 살균된 젖병입니다. 그런데 당시 아프리카에는 깨끗한 물도, 주방 시설도 턱없이 부족했거든요. 현실적으로 세균에 오염된 물에 분유를 타서 먹일 수밖에 없었고, 소독되지 않은 젖병으로 아기들을 먹이다 보니 약한 영아들은 곧바로 설사병과 영양실조에 노출된 겁니다. 실제로 유니세프는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분유로 키운 아기는 모유 수유한 아기에 비해 설사로 사망할 위험이 6~25배까지 높다고 경고해오기도 할 정도였으니까요.

ⓒ 필립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제 시작됩니다.
분유 무료 지원이 끊기게 됐거든요. 분유를 먹는 동안에는 엄마의 젖이 점차 말라버리게 되는데, 모유 수유라는 게, 한번 끊으면 다시 나오기가 쉽지 않거든요. 네슬레는 이 점을 노리고 초기에만 무료로 분유를 공급했던 거죠. 아프리카 사람들을 공짜 분유에 길들여 놓고 높은 가격의 분유 판매를 시작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됐을까요?
아프리카의 경제 사정 상 엄마들은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을 맞닥뜨립니다. 그렇게 모유도 안 나오는 상황이고 분유 살 돈도 없어진 엄마들은 어쩔 수 없이 분유 가루에 물을 최대한 많이 타서 먹이는 방법을 택하게 되는데요. 이러면 당연히 영양은 턱없이 부족했고, 아기들은 점점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에 빠지게 되겠죠. 점점 아이들은 면역력이 약해져 각종 질병에 취약해졌고, 그렇게 목숨을 잃는 영아들이 속출했습니다. 반면 네슬레는 돈을 벌었고요.
그렇게 피해 규모. 한 연구에서는 네슬레가 분유 시장을 개척한 1981년 무렵, 깨끗한 물을 사용할 수 없는 환경의 가정에서 매년 약 21만 2천 명의 영아가 추가로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나아가 1960년부터 2015년까지 전 세계 저소득국에서 무려 1,090만 명에 달하는 영아가 분유 마케팅으로 인한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사망했다는 분석도 있죠.
알려지는 진실
시간이 흘러 분유로 인해 아기들이 죽어간다는 충격적 사실이 서서히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각국의 엄마들과 시민단체가 들고 일어났죠. 1974년, 영국의 시민단체 워 온 원트(War on Want)는 문제를 고발하는 소책자 《누가 아기를 죽이는가?》를 발간하여 네슬레 분유 마케팅의 실태를 폭로했습니다. 같은 해 독일의 제3세계 행동 그룹은 《네슬레가 아기들을 죽이고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으며 네슬레를 규탄했고요. 네슬레가 어떻게 분유 판매를 위해 가난한 국가의 산모들을 속이고 아이들의 건강을 해쳤는지 생생하게 담겨 있었죠.
1970년대 중반 이후 이러한 움직임은 전 세계로 확산되었습니다. 미국의 젊은 엄마들도 행동에 나서 1977년 인팩트라는 국제 분유 행동연합을 결성하고 조직적인 불매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아프리카 영아 사망에 대한 실질적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요. 그렇게 각국 소비자들이 연대하여 국제네슬레보이콧위원회라는 세계적 연합체까지 결성되었습니다. 이는 특정 기업을 상대로 한 사상 최초의 국제적 불매운동 연합으로 기록되죠.

ⓒ historic Pictoric
1970년대 후반 네슬레 분유 불매운동을 알리는 포스터. 해골이 젖병을 건네는 충격적 그림과 함께 “네슬레 제품 불매” 문구가 적혀 있다. 네슬레의 분유 판매 행위를 ‘아기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죽음의 손길’로 묘사하며 기업을 강하게 규탄했다.
심지어 젖병을 마치 관처럼 형상화한 듯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가 젖병 속에 들어 있는 그림과 함께 더 베이비 킬러라는 직설적인 문구를 내걸기도 했고요.

ⓒ IBS
네슬레의 탐욕이 아이들의 목숨까지 빼앗고 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고발한 것이죠. 이런 극단적인 표현은 많은 이들의 분노와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불매운동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WHO 국제 규약 제정
소비자들의 압박과 동시에, 국제기구와 각국 정부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1978년에는 미국 상원에서 분유 등 모유 대체품의 개발도상국 홍보 실태에 대한 공식 청문회가 열려 문제의 심각성이 공론화되었습니다. 그리고 1979년,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니세프(UNICEF)가 공동 주최한 국제회의에서 분유를 포함한 모유 대체 식품의 마케팅 규제를 위한 국제 강령 제정이 논의되었습니다. 그 결과 1981년 WHO 총회에서 정말 독특한 규약, 《모유 대체품의 마케팅에 관한 국제 규약(International Code of Marketing of Breast-milk Substitutes)》이 채택됩니다.
모유 대체식품의 광고와 판촉을 전면 금지하고, 의료인을 통한 홍보나 무료 샘플 제공을 불법화하는 등 강도 높은 내용을 담고 있었어요. 또한 제품 라벨에도 모유 수유가 아기에게 가장 좋다는 점과 분유 사용 시 위험에 대해 명시하도록 요구했습니다. 아울러 분유회사는 의학적 정보 제공 이외의 어떤 홍보도 해서는 안 되며, 부모 상담은 보건 전문가의 역할임을 천명했죠.
그런데요. 이 규약은 말 그대로 ‘국제적 권고’일 뿐, 각 기업의 자발적 준수에 맡겨진 측면이 있었습니다. 네슬레는 WHO 규약이 만들어진 뒤에도 처음에는 ‘우리 제품을 비위생적으로 사용한 것까지 책임질 수 없다!’며 반발했습니다. 실제로 네슬레 대변인은 1978년 미국 의회에서 이번 논란을 ‘자유시장 경제에 대한 공격’이라고까지 언급하며 문제 제기를 일축하려 했는데요. 후일담으로는 이 발언은 거센 비난을 받아 나중에 정식으로 사과를 하기도 했습니다만, 그만큼 초기에 네슬레 본사는 자신의 과오를 쉽게 인정하려 들지 않았던 것이죠.
네슬레의 항복
하지만 다굴 앞에 장사 없다고 하죠. 전 세계 소비자들의 뜨거운 연대는 결국 거대 기업 네슬레를 무릎 꿇게 만들었습니다. 이미 수년간 이어진 불매운동의 타격이 컸던 데다, 기업 이미지도 나락으로 떨어지자 네슬레도 더는 버틸 수 없었던 건데요. 1984년, 마침내 네슬레는 국제 시민단체들과의 협상을 통해 ‘더 이상 빈곤국에서 공격적인 분유 마케팅을 하지 않겠다’라며 공식 약속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약 6년 반 동안 이어졌던 네슬레 불매운동이 극적으로 막을 내리게 된 거죠.

ⓒ eBay
사과는 했니?
하지만 피해 당사자인 아프리카 산모들과 소비자들에게 직접적인 공개 사과를 한 기록은 분명치 않습니다. 네슬레는 1984년 합의 때 어디까지나 국제 코드 이행과 마케팅 정책 변경을 약속하는 선에서 입장을 밝혔고, 잘못을 시인하거나 용서를 구하는 표현은 피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럼에도 이때부터 변한 점이 많은데요. 포장에 그려 넣었던 행복한 아기와 엄마 그림도 모두 삭제하고, 분유 제품에는 아예 ‘아기에게 가장 좋은 영양은 모유입니다’라는 경고 문구를 눈에 띄게 넣었습니다. 또 산부인과나 소아과 병원에는 분유 광고 대신 ‘모유 수유가 가장 좋습니다’라는 안내판을 배포하며 스스로 디마케팅(demarketing)에 나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죠.
흥미로운 점은, 1970~80년대의 이 네슬레 분유 사건이 글로벌 CSR 운동의 효시로 평가된다는 사실입니다. 훗날 1990년대 후반 나이키의 아동노동 논란 등이 폭로되어 기업 불매운동으로 번졌을 때, 많은 학자들은 그 밑바탕에 1980년대 네슬레 보이콧 운동의 경험이 깔려 있었다고 분석합니다. 실제로 이 사건 이후 다국적 기업들은 개발도상국에서 제품을 판매할 때 현지의 문화와 건강, 인권을 고려한 윤리적 전략을 수립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죠.
저는 개인적으로 참 궁금했던 점이 있는데요. 기업의 제1목적은 누가 뭐래도 이윤인데, 그 이윤 추구를 위해 어느 정도 수준의 사회적 책임을 짊어져야 하느냐는 겁니다.
비판 받아 마땅하고, 많은 비난도 받았겠지만 백종원 대표도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이윤 추구의 극대화로 인해 사회적 책임 쪽 저울이 가벼워진 거겠죠.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기업이 돈 외에 다른 요소를 생각할 필요가 있느냐고 생각을 하실 수도, 기업이 나름의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는데요. 의견이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
🐯콘텐츠 디렉터, 리오
백종원 대표. 이제는 좀 잠잠해진 것 같은데 한동안 열기가 뜨겁다 못해 대국민 사기극이니 어쩌니 미디어를 장악했었죠.
빽햄, 밀키트부터 레시피 도둑, 원산지 허위표기 등등 문제가 정말 많았지만요. 여기서 형사입건까지 된 원산지 파트를 제외하면 사실 법적으로 처벌 받거나 제재를 받을 수 있는 사안은 거의 없었습니다. 대부분 ‘도덕적 비난’의 영역에 가까웠죠.
오늘 주제가 더본코리아라는 건 아니고요. 사실 이런 사례는 많습니다. 법적으로 문제 되진 않지만 도덕적으로 지탄 받는 일들. 전략이 될 수도 있지만 밝혀졌을 땐 기만, 나아가 사기로 여겨질 수도 있는 행동들 말입니다.
그럼 여기서 질문 하나 드려볼게요. 분유 먹는 아이, 모유 먹는 아이 둘 중에 누가 더 건강할까요? 혹시, “유럽의 건강한 아기들은 모유 대신 분유를 먹는다”는 말을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1970년대 아프리카, 실제로 글로벌 메가 식품 기업이 내건 광고 문구인데요.
세계 최대 식품회사 중 하나인 네슬레. 아프리카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무료로 분유 샘플을 뿌려대는 마케팅을 합니다. 보통 무료로 샘플이나 체험을 제공하는 이유는 씨앗을 뿌리기 위함인데요. 시딩이라고들 하죠. 체험자가 우리 제품을 마음에 들어 하면 다음번에 재사용, 구매로 이어지도록 유도하는 투자식 마케팅 방법입니다.
그런데 이때 네슬레가 뿌렸던 씨앗. 철저히 설계된 일종의 사기극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약1,100만 명의 아이가 사망하게 됐고요.
세상의 모든 브랜드 이야기
오늘 주제는 한 기업의 선택이 대륙 전체를 망가뜨려버릴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네슬레입니다.
영상으로도 준비 되어 있으니 아래 링크를 확인해주세요!
https://youtu.be/QOnVP2s1jIM
아프리카로 눈 돌린 네슬레
서구의 베이비붐이 끝난 1960~70년대에 접어들면서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출생율 감소와 모유 수유 장려 움직임으로 분유 판매량이 정체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네슬레의 주력 제품은 분유였는데요.이러한 베이비 버스트 현상은 큰 타격이 됐습니다. 어쩔 수 없이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했기에 미개척 시장을 해외로 돌렸죠. 특히 출산율이 높지만 경제 형편이 어려운 아프리카와 아시아, 중남미를 주목했는데요.
이 중 가장 문제가 됐던 건 아프리카. 네슬레는 아프리카 시장 공략을 위해 적극적인 마케팅 공세에 나섭니다. 아프리카 각지의 병원과 마을을 돌며 무료 분유 샘플을 대량으로 나눠주기 시작했어요. ‘유럽의 토실토실한 아이들은 모두 분유를 먹고 자란다’는 카피를 메인으로, 아프리카 엄마들의 관심을 끈 건데요. 이때 판촉 직원들 복장을 의사나 간호사 복장으로 입혀서 밀크 너스(milk nurse)를 만들기도 했죠. ‘분유를 먹이면 아이들이 영양 부족 없이 잘 자란다’고 설득하면서요.
그리고 당연하게도 경제 사정상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기 힘들었던 많은 아프리카 어머니들이 공짜로 얻은 분유에 의존하게 됩니다. 저기 잘 사는 나라에서 온 의사 간호사들이 모유보다 분유가 좋다고 하는데 심지어 공짜로 주니까 거부할 이유가 없었거든요. 하지만 이 짧은 호황의 이면에는 끔찍한 대가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분유가 불러온 비극
어느 날, 아기들이 하나 둘 심한 설사와 구토 증세를 보이더니 급기야 고열에 시달리다 사망하는 사례가 나타나게 됩니다.
이게 당연한 게, 분유를 먹일 때 가장 중요한 건 깨끗한 물과 살균된 젖병입니다. 그런데 당시 아프리카에는 깨끗한 물도, 주방 시설도 턱없이 부족했거든요. 현실적으로 세균에 오염된 물에 분유를 타서 먹일 수밖에 없었고, 소독되지 않은 젖병으로 아기들을 먹이다 보니 약한 영아들은 곧바로 설사병과 영양실조에 노출된 겁니다. 실제로 유니세프는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분유로 키운 아기는 모유 수유한 아기에 비해 설사로 사망할 위험이 6~25배까지 높다고 경고해오기도 할 정도였으니까요.
ⓒ 필립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제 시작됩니다.
분유 무료 지원이 끊기게 됐거든요. 분유를 먹는 동안에는 엄마의 젖이 점차 말라버리게 되는데, 모유 수유라는 게, 한번 끊으면 다시 나오기가 쉽지 않거든요. 네슬레는 이 점을 노리고 초기에만 무료로 분유를 공급했던 거죠. 아프리카 사람들을 공짜 분유에 길들여 놓고 높은 가격의 분유 판매를 시작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됐을까요?
아프리카의 경제 사정 상 엄마들은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을 맞닥뜨립니다. 그렇게 모유도 안 나오는 상황이고 분유 살 돈도 없어진 엄마들은 어쩔 수 없이 분유 가루에 물을 최대한 많이 타서 먹이는 방법을 택하게 되는데요. 이러면 당연히 영양은 턱없이 부족했고, 아기들은 점점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에 빠지게 되겠죠. 점점 아이들은 면역력이 약해져 각종 질병에 취약해졌고, 그렇게 목숨을 잃는 영아들이 속출했습니다. 반면 네슬레는 돈을 벌었고요.
그렇게 피해 규모. 한 연구에서는 네슬레가 분유 시장을 개척한 1981년 무렵, 깨끗한 물을 사용할 수 없는 환경의 가정에서 매년 약 21만 2천 명의 영아가 추가로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나아가 1960년부터 2015년까지 전 세계 저소득국에서 무려 1,090만 명에 달하는 영아가 분유 마케팅으로 인한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사망했다는 분석도 있죠.
알려지는 진실
시간이 흘러 분유로 인해 아기들이 죽어간다는 충격적 사실이 서서히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각국의 엄마들과 시민단체가 들고 일어났죠. 1974년, 영국의 시민단체 워 온 원트(War on Want)는 문제를 고발하는 소책자 《누가 아기를 죽이는가?》를 발간하여 네슬레 분유 마케팅의 실태를 폭로했습니다. 같은 해 독일의 제3세계 행동 그룹은 《네슬레가 아기들을 죽이고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으며 네슬레를 규탄했고요. 네슬레가 어떻게 분유 판매를 위해 가난한 국가의 산모들을 속이고 아이들의 건강을 해쳤는지 생생하게 담겨 있었죠.
1970년대 중반 이후 이러한 움직임은 전 세계로 확산되었습니다. 미국의 젊은 엄마들도 행동에 나서 1977년 인팩트라는 국제 분유 행동연합을 결성하고 조직적인 불매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아프리카 영아 사망에 대한 실질적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요. 그렇게 각국 소비자들이 연대하여 국제네슬레보이콧위원회라는 세계적 연합체까지 결성되었습니다. 이는 특정 기업을 상대로 한 사상 최초의 국제적 불매운동 연합으로 기록되죠.

ⓒ historic Pictoric
1970년대 후반 네슬레 분유 불매운동을 알리는 포스터. 해골이 젖병을 건네는 충격적 그림과 함께 “네슬레 제품 불매” 문구가 적혀 있다. 네슬레의 분유 판매 행위를 ‘아기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죽음의 손길’로 묘사하며 기업을 강하게 규탄했다.
심지어 젖병을 마치 관처럼 형상화한 듯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가 젖병 속에 들어 있는 그림과 함께 더 베이비 킬러라는 직설적인 문구를 내걸기도 했고요.
ⓒ IBS
네슬레의 탐욕이 아이들의 목숨까지 빼앗고 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고발한 것이죠. 이런 극단적인 표현은 많은 이들의 분노와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불매운동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WHO 국제 규약 제정
소비자들의 압박과 동시에, 국제기구와 각국 정부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1978년에는 미국 상원에서 분유 등 모유 대체품의 개발도상국 홍보 실태에 대한 공식 청문회가 열려 문제의 심각성이 공론화되었습니다. 그리고 1979년,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니세프(UNICEF)가 공동 주최한 국제회의에서 분유를 포함한 모유 대체 식품의 마케팅 규제를 위한 국제 강령 제정이 논의되었습니다. 그 결과 1981년 WHO 총회에서 정말 독특한 규약, 《모유 대체품의 마케팅에 관한 국제 규약(International Code of Marketing of Breast-milk Substitutes)》이 채택됩니다.
모유 대체식품의 광고와 판촉을 전면 금지하고, 의료인을 통한 홍보나 무료 샘플 제공을 불법화하는 등 강도 높은 내용을 담고 있었어요. 또한 제품 라벨에도 모유 수유가 아기에게 가장 좋다는 점과 분유 사용 시 위험에 대해 명시하도록 요구했습니다. 아울러 분유회사는 의학적 정보 제공 이외의 어떤 홍보도 해서는 안 되며, 부모 상담은 보건 전문가의 역할임을 천명했죠.
그런데요. 이 규약은 말 그대로 ‘국제적 권고’일 뿐, 각 기업의 자발적 준수에 맡겨진 측면이 있었습니다. 네슬레는 WHO 규약이 만들어진 뒤에도 처음에는 ‘우리 제품을 비위생적으로 사용한 것까지 책임질 수 없다!’며 반발했습니다. 실제로 네슬레 대변인은 1978년 미국 의회에서 이번 논란을 ‘자유시장 경제에 대한 공격’이라고까지 언급하며 문제 제기를 일축하려 했는데요. 후일담으로는 이 발언은 거센 비난을 받아 나중에 정식으로 사과를 하기도 했습니다만, 그만큼 초기에 네슬레 본사는 자신의 과오를 쉽게 인정하려 들지 않았던 것이죠.
네슬레의 항복
하지만 다굴 앞에 장사 없다고 하죠. 전 세계 소비자들의 뜨거운 연대는 결국 거대 기업 네슬레를 무릎 꿇게 만들었습니다. 이미 수년간 이어진 불매운동의 타격이 컸던 데다, 기업 이미지도 나락으로 떨어지자 네슬레도 더는 버틸 수 없었던 건데요. 1984년, 마침내 네슬레는 국제 시민단체들과의 협상을 통해 ‘더 이상 빈곤국에서 공격적인 분유 마케팅을 하지 않겠다’라며 공식 약속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약 6년 반 동안 이어졌던 네슬레 불매운동이 극적으로 막을 내리게 된 거죠.
ⓒ eBay
사과는 했니?
하지만 피해 당사자인 아프리카 산모들과 소비자들에게 직접적인 공개 사과를 한 기록은 분명치 않습니다. 네슬레는 1984년 합의 때 어디까지나 국제 코드 이행과 마케팅 정책 변경을 약속하는 선에서 입장을 밝혔고, 잘못을 시인하거나 용서를 구하는 표현은 피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럼에도 이때부터 변한 점이 많은데요. 포장에 그려 넣었던 행복한 아기와 엄마 그림도 모두 삭제하고, 분유 제품에는 아예 ‘아기에게 가장 좋은 영양은 모유입니다’라는 경고 문구를 눈에 띄게 넣었습니다. 또 산부인과나 소아과 병원에는 분유 광고 대신 ‘모유 수유가 가장 좋습니다’라는 안내판을 배포하며 스스로 디마케팅(demarketing)에 나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죠.
흥미로운 점은, 1970~80년대의 이 네슬레 분유 사건이 글로벌 CSR 운동의 효시로 평가된다는 사실입니다. 훗날 1990년대 후반 나이키의 아동노동 논란 등이 폭로되어 기업 불매운동으로 번졌을 때, 많은 학자들은 그 밑바탕에 1980년대 네슬레 보이콧 운동의 경험이 깔려 있었다고 분석합니다. 실제로 이 사건 이후 다국적 기업들은 개발도상국에서 제품을 판매할 때 현지의 문화와 건강, 인권을 고려한 윤리적 전략을 수립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죠.
저는 개인적으로 참 궁금했던 점이 있는데요. 기업의 제1목적은 누가 뭐래도 이윤인데, 그 이윤 추구를 위해 어느 정도 수준의 사회적 책임을 짊어져야 하느냐는 겁니다.
비판 받아 마땅하고, 많은 비난도 받았겠지만 백종원 대표도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이윤 추구의 극대화로 인해 사회적 책임 쪽 저울이 가벼워진 거겠죠.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기업이 돈 외에 다른 요소를 생각할 필요가 있느냐고 생각을 하실 수도, 기업이 나름의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는데요. 의견이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
🐯콘텐츠 디렉터, 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