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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모브 | 텔유레터 | 딥티크 |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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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모브 | 텔유레터 | 딥티크 | #35


니치가 도대체 뭔데?

혹시, 특별한 날 꼭 챙기는 루틴이 있으신가요? 아마 그 마지막엔 꼭 향수가 있을 것 같은데요. 바이레도, 조말론, 딥티크. 이런 이름 들어보셨나요?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은 아마 대부분 아실 거라고 생각해요. 향수 시장에선 유명한 브랜드들이거든요. 몇 년 전부터 확 뜬 이 브랜드들, 그냥 향수가 아니라 ‘니치’향수라고 부릅니다.


이 니치 향수. 국내 향수 업계 매출액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국내 매출 무려 1조 원 달성을 바라보고 있고요. 일반적인 향수보다 몇배씩 비싸면서 말이죠.

니치향수 | 세상의 모든 브랜드 이야기 | 세모브 | 텔유레터 | 텔유

ⓒ머니투데이

그러면 ‘니치’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저는 처음에 괜히 독일의 그 나치가 떠올라서, 자연스럽게 유럽의 어떤 국가나 문화에서 비롯된 향수겠거니 했는데요. 그게 아니더라고요. 니치. 이탈리아어 ‘nicchia’에서 유래된 말로 ‘틈’, ‘움푹 들어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개성이 있다는 뜻이죠. 대중적인 향보다는 ‘소수의 고객들에게만 제공하는 향수’ 뭐 이런 의미라고 해요.


자 그런데, 아까 매출의 90%니, 매출 1조 원이니 했잖아요? 대중적인 것보단 소수들이 즐기는 게 니치 향수인데, 모든 대중이 니치 향수를 즐기고 있는 모순적인 현상이 보이고 있습니다. 적어도 국내 한정으로는 명품 향수들이 이제 상대가 안 될 정도로요. 심지어 니치 향수는 대량생산을 안 하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가 이루어 질 수가 없는데도 말이죠. 아무튼 뭐 앞뒤도 안 맞고 말도 안 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이제 문제가 생기는데요. 개성을 보이고자 몇몇만 이용했던 비싼 니치 향수가, 이젠 모든 대중이 쓰고 있으니 그 희소성을 잃는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니치에 열광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흔하지 않은 ‘나만의 향’이라는 만족감에서 오는 건데, 대량 생산으로 너도 나도 사용하게 되면 기존 명품 브랜드 향수들과 차별점이 사라지는 거니까요.


그럼, 지금 시장의 모순은 어떻게 해결될까요? 개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니치 향수의 대표. 오늘 주제는 딥티크입니다.

영상으로 확인하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확인해주세요!

니치향수 | 딥티크 | 세상의 모든 브랜드 이야기 | 세모브 | 텔유레터 | 텔유

https://www.youtube.com/watch?v=mawQbZECMqE

니치 대통령, 딥티크

혹시 소설책이나 영화로 <향수>라는 작품 보셨나요? 18세기 프랑스에서 태어난 천재적인 후각을 가진 남자,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가 ‘완벽한 향기’를 만들기 위해 여인들을 희생시키는 광기 어린 여정을 그린 작품인데요. 잔혹하기도 하지만 향수를 주제로 ‘존재하는 것의 영혼은 향기다’라는 명대사를 남기며 찬사를 받았죠. 딥티크는 바로 이 영화 <향수>의 배경지인 프랑스 파리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딥티크, 처음부터 향수 브랜드는 아니었어요. 딥’디’크도 아니고요. 딥티크는 처음에 섬유 사업으로 시작했습니다. 이브 쿠에랑, 크리스티앙 고트로, 데이몬드 녹스-리트라는 세 남자가 함께 설립한 브랜드인데요. 다들 예술계에서 한가닥 하는 사람들이었어요.


특히 크리스티앙 고트로와 데이몬드 녹스-리트는 각각 인테리어 디자이너, 화가였는데 이미 패브릭, 벽지를 디자인해서 함께 팔고 있었습니다. 업계에서 나름 유명했었는데 이때까진 큰 사업은 아니었어요. 그리고 마침 예술과 사업을 동시에 하고 싶던 이브 쿠에랑을 우연히 알게 되어 함께 사업을 시작해보기로 한 거죠.


아무튼, 그렇게 파리 생제르맹 34번가의 매장에서 패브릭 사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당시 매장에 똑같은 크기의 창문 두 개가 나란히 있었다고 하는데요. 예술가들이라 그런지, 이 창문을 보는 시선도 남달랐어요. 이 창문이 꼭 액자 속 사진처럼 보였거든요. 그래서 비슷하거나 관련 있는 형태의 이미지를 나란히 연결시켜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법 딥틱(diptych)이라는 이름에서 따와 프랑스식으로 변형해 매장 이름을 지금의 딥티크(diptyque)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딥틱 | 딥티크 | 세상의 모든 브랜드 이야기 | 세모브 | 텔유레터 | 텔유

ⓒistock

그런데 여기까지만 보면 참 예술적이고 자유롭고 좋지만요. 막상 장사는 잘 안 됐습니다. 2년 가량을 거의 적자 보다시피 했어요. 당시에 상류층들은 실크나 벨벳 소재를 좋아해서 딥티크의 면 소재 패브릭에는 관심이 없었거든요.


그러면 딥티크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했을까요? 돌파구는 장식품들에서 나옵니다. 예술가들 셋이 모여서 인테리어를 했으니 기존 매장 내부가 굉장히 예뻤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이 여기서 파는 천에는 관심이 없어도, 내부 인테리어 장식품에는 관심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그래서 장식품들로 밀고 나가는 일종의 편집샵이 됐죠.


그리고 이 장식품 중에 ‘포푸리’가 있었는데요. 포푸리는 쟁반이나 얇은 천 주머니에 말린 꽃을 담아서 사용하는 디퓨저입니다. 그리고 이게 히트를 치는 바람에 향초를 만들어서 팔기로 했죠.

포푸리 | 세상의 모든 브랜드 이야기 | 세모브 | 텔유레터 | 텔유

ⓒ스쿨샘

그게 1963년입니다. 딥티크의 첫 향초가 출시되고요. ‘향’이라는 키워드에서 성공의 맛을 본 딥티크는 5년 후 1968년에는 향수 사업까지 진출하게 되죠. 섬유 브랜드에서 향 브랜드로 탈바꿈한 겁니다. 기존 패브릭에 하던 디자인을 그대로 향초와 향수의 라벨로 사용하고요.


이렇게 섬유에서 장신구로, 장신구에서 향초로, 향초에서 향수 브랜드까지 확장하면서 딥티크는 초기부터 정말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게 이들의 철학이었는데요. ‘누구보다 자유롭고, 진정성 있게’라는 가치였습니다. 그리고 그 가치가 향에 입혀지면서 ‘니치 향수’로 자리하게 되죠.


향에 스토리텔링을 불어 넣는 거였습니다. 대표적으로는 향 ‘도손’을 꼽을 수 있겠는데요. 설립 삼인방 중 이브 쿠에랑이라는 사람이 어린 시절 베트남 도손 바닷가에서의 고요함과 꽃향기를 추억하며 담아낸 향이라고 하죠.


이런 철학, 독특한 제품과 함께, 2001년에는 섹스앤더시티캐리브래드쇼가 딥티크의 베이 향초를 사용하면서 부터는 완전히 세계적인 브랜드로 떠오르게 됩니다. 성공한 여성들의 상징과 같은 브랜드가 됐죠. 소위 말하는 명품이 된 겁니다.



팝업스토어, 이게 향수야 오브제야?

그리고 딥티크의 팝업스토어. 딥티크는 한국에서도 벌써 여러 번 팝업스토어를 오픈했었는데요. 티는 안 내도 브랜드의 그 역사가 매번 잘 드러납니다. 항상 내부 디자인이 정말 예쁘거든요. 딥티크가 어렵던 당시 매장을 살린 게 예술가들의 취향이 듬뿍 담긴 그 내부 장식이었잖아요? 그리고 잘 안 팔리던 패브릭 디자인을 살려서 향수 라벨로 부활시켰고요.

딥티크 | 딥티크 팝업스토어 | 세상의 모든 브랜드 이야기 | 세모브 | 텔유레터 | 텔유

ⓒ패션비즈

그러니까 딥티크는 향수지만 내부 장식품, 오브제 역할을 수행하는 제품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딥티크의 팝업스토어는 매번 미니 전시회 같은 느낌이 나는 거고요. 이번 홀리데이 팝업스토어도 마찬가집니다. 곳곳엔 따뜻한 느낌의 펠트 소재가 사용됐고, 누가 봐도 크리스마스 느낌이죠. 팝업 ’스토어’라는 느낌보단 팝업 ’전시’나 팝업 ’파티’같은 느낌이 듭니다.


저는 브랜드에서 이 느낌을 의도했다고 생각하는데요. 향수는 기본 그리고 소비자들의 일상 속 공간을 예쁘게 구현하고, 딥티크의 제품이 오브제로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거죠. 그러니까 이 부분을 잘 느껴보는 게 딥티크 팝업스토어를 방문하는 데 핵심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대중화 된 니치라고?

그러면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와서요. 니치 향수라는 건 분명히 나만의 희소성 있는 그런 뜻을 가지고 있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팝업스토어도 꾸준히 진행하고, 너무 많이 대중화 돼서 니치 향수라는 그 가치를 잃는 게 아니냐고요.


소비자들이 니치에 열광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흔히 맡을 수 없는 ‘나만의 개성 있는 향’이라는 사실, 그리고 흔히 볼 수 없는 나만의 브랜드를 소비하는 만족감에서 온 건데, 대중화가 심해지고 대량 생산으로 너도나도 사용하게 되면 기존 명품 브랜드 향수와 차별점이 사라지는 거니까요. ‘니치 향수가 명품 향수를 이기려면 희소성 유지가 관건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소위 물량전을 펼치면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니치 향수들이 밀리지 않을까 싶다고요.


실제로 명품 브랜드들이 향수, 뷰티, 코스메틱 제품군을 럭셔리 산업의 핵심으로 주목하고 있습니다. 최근 침체기를 겪고 있는 명품 업계에서도 이러한 제품군과 관련 브랜드들은 오히려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데요.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2년 전 뷰티 그룹 ‘에스티로더’의 톰포드 인수입니다. 톰포드의 정장은 수천만 원 대를 호가하지만 향수는 십만원 단위로 구매할 수 있죠. 이게 우선 소비자들을 브랜드의 팬으로 만들기 위함인데요. 적은 지출은 아니지만 기존 명품들과 비교했을 때 훨씬 저렴한 값으로 만족도를 느낄 수 있기에 스몰 럭셔리 소비가 유행하고 있고, 브랜드 입장에서도 이런 소비를 유도하는 거죠. 그래서 럭셔리 브랜드들의 향수 등 뷰티 시장 진출은 앞으로 더 확산될 것으로 보입니다.

톰포드 | 에스티로더 | 세상의 모든 브랜드 이야기 | 세모브 | 텔유레터 | 텔유

ⓒ어패럴뉴스

그러면 니치 향수 브랜드들은 정말로 설 자리를 잃을까요? 저는 니치 향수 브랜드들이 ‘니치’라는 이름을 새로 정립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향수를 만드는 명품 브랜드들은 향수 뿐만이 아니라 신발, 가방, 옷 등 다른 카테고리에서도 명품이잖아요? 니치 향수 브랜드들이 이 부분을 꼬집는 것 같아요. 적어도 향수에서 만큼은 다른 브랜드가 최고가 되겠다고요. 그 특이점, 그 틈을 뜻하는 ‘니치’로 자리하겠다는 뜻이 아닌가, 싶습니다. 기존, 흔치 않은 향으로 승부 보던 부분은 실내 인테리어 오브제로서의 역할로 대체시키고요.


영리를 추구하는 회사의 최종 목표는 이윤이잖아요? 이윤을 최대로 창출 해내려면 많이 팔거나, 비싸게 팔아야 하는데, 가격을 무턱대고 올려버리기엔 소비자들이 향수라는 카테고리에 지출하기로 책정한 금액대가 타 명품 제품들보다는 현저히 낮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대중화를 유도하고, 다른 부분으로 소비자 만족도를 높이는 전략을 보이고 있는 거죠.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 연말과 크리스마스 시즌. 향수만큼 좋은 선물도 없을 것 같은데요. 여러분도 이번 기회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어울리는 향을 고민해보며 뜻깊은 시간을 보내셨으면 좋겠네요. 그러면 저는 다음에 더 재밌는 브랜드 이야기와 함께 돌아오겠습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콘텐츠 디렉터 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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