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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것들 | 텔유 레터 | #43 병뚜껑


일상의 것들 | 텔유 레터 | #43 병뚜껑

저는 일상 속 디자인에 대해 궁금증이 많은 편인데요. 대부분의 디자인에는 그에 맞는 이유가 있고, 그 이유는 상당수가 ‘기술’ 또는 ‘문화’라는 공통점이 있더라고요. 일상의 것들을 읽으실 땐 ‘불편함을 해소하는 기술과 그 기술에 어울리는 디자인’, 그리고 ‘당시 시대상과 문화’에 초점을 맞춰보면 더욱 유익할 것 같습니다(물론 예외도 있지만요!).


혹시 ‘병뚜껑은 왜 이렇게 뾰족뾰족한지’ 생각해보신 적 있나요? 콜라, 사이다부터 시원한 맥주까지. ‘뻥~!’ 따는 재미도 있는 병뚜껑. 그런데 병따개가 없을 땐 난처해지기 일쑤죠. 도대체 이 뾰족뾰족한 병뚜껑 디자인엔 어떤 의도가 있었을까요? 그리고 왜 하필 ‘유리병’에만 이 뚜껑을 사용할까요?


아래 링크에서 영상으로도 확인해보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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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jb5q60d6ZTg


날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날 더 강하게 만든다

뾰족뾰족한 병뚜껑의 모습. 당연히 ‘뚜껑’이라는 게 처음 등장했을 땐 이런 모습이 아니었어요. 진흙이나 크고 판판한 돌로 식량을 덮어 놓던 시절부터 그 진흙 점토를 구워 도자기의 형태로 만들고 뚜껑을 얹기까지 여러 과정을 거쳐 지금의 형태가 됐죠. 즉, 뚜껑의 역사는 인간이 무언가를 보관하려는 욕구로부터 시작된 거예요. 내가 지키고자 하는 게 외부와 접촉되어 성질이 변하는 걸 원하지 않았거든요.


아무튼 그렇게 뚜껑은 가죽, 흙, 기름 묻힌 헝겊 등을 거치며 차근차근 발전해서 지금도 쓰이는 그 ‘코르크’가 등장하게 돼요. 이때가 약 기원전 3,000년 경이라고 하니 얼마나 대단한 발명인지는 말하면 입만 아프겠죠?


이 세계적인 발명품 코르크는 기존 뚜껑들과 달리 특별한 성질이 있었는데요. 바로 내부 압력을 유지해 주는 거였어요. 기존의 뚜껑들이 그저 ‘덮는’ 정도 수준이었다면 코르크는 비로소 ‘밀봉’에 가까워진 뚜껑이었죠.

코르크 | 일상의 것들 | 텔유 레터 | 텔유

ⓒ조은문구

그리고 그로부터 약 4900년이 흐른 1892년, 이때도 여전히 코르크 마개를 사용하고 있었는데요. 슬슬 다른 기술들도 발전하면서 ‘탄산’이 유행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는데요. 방금 전에 코르크가 ‘밀봉’에 가까워진 뚜껑이라고 했잖아요? 즉, 완전 밀봉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내부 압력은 유지해 주지만 미세하게 공기가 순환되거든요.


그래서 이 순환이라는 특성 때문에 코르크가 항상 와인에 사용되는 거예요. 다른 음료를 보관하면 내부에 공기가 통하는 바람에 일반적인 과일 음료나 탄산음료는 상하고, 탄산도 다 빠져버리거든요. 옛날에 단 음료보다 술이 더 인기가 많았던 것도 이런 보관 방법 때문이겠죠?


아무튼 다시 1892년, 당시 19세기아일랜드가 주요 산업이었던 감자 기근으로 대규모 기아에 시달렸어요. 그래서 미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많았는데요. 이때 발명가 윌리엄 페인터도 이 행렬에 함께했죠. 윌리엄 페인터는 발명가라곤 하지만 전전긍긍 딱히 히트작 없이 시도만 하는 인물이었는데요. 계속된 실패에 답답한 나머지 시원한 탄산음료를 마시려고 했는데, 이게 웬걸 탄산이 다 빠져서 그냥 과일 주스 맛만 났습니다. 심지어 음료가 상해있던 바람에 배탈까지 났죠. 당시 음료 뚜껑은 대부분 코르크 마개였거든요.


그래서 아무래도 이 뚜껑을 발명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절대 탄산이 빠지지 않고 상하지도 않도록 ‘완전 밀봉’하는 게 목적이었죠.


그날부터 병뚜껑 발명에 몰두한 윌리엄 페인터. 어떤 모양으로 만들지 고민했는데요. 병의 입구에 들어가는 기존 코르크의 형태보다는 병을 완전히 덮어버리는 형태가 밀봉에 유리하겠다는 생각했습니다. 떠올린 게 바로 잼 통을 헝겊으로 덮어서 끈으로 묶는 방식이었죠. 그리고 이 모양을 발전시켜서 톱니모양 뚜껑을 만들어 보기로 합니다.

잼뚜껑 | 일상의 것들 | 텔유 레터 | 텔유

ⓒfreepik

그렇게 새로 만들 뚜껑의 소재를 고민하게 됩니다. 헝겊은 당연히 아닐 것이고 코르크도 안 된다는 걸 이미 배웠잖아요? 자연스럽게 철, 알루미늄 쪽으로 눈길이 갔습니다. 하지만 이런 소재로 뚜껑을 만들었을 때 생기는 큰 문제가 있었어요. 뚜껑을 열 때나 닫을 때 충격이 가해지기 때문에 유리병이 깨진다는 거였는데요.


그래서 톱니모양을 잡는 데 삼각형을 도입해요. 지금의 뾰족뾰족한 병뚜껑이 탄생한 첫 순간인 거죠. 삼각형을 도입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는데, 바로 삼각형이 가진 특성 때문이었어요.


삼각형은 변형되지 않아요. 삼각형은 세 변과 세 각이 고정되면 외부 힘에 의해 모양이 변하지 않는 유일한 다각형인데요. 사각형이나 다른 다각형은 변형될 수 있지만, 삼각형은 외부에서 힘이 가해져도 모든 변과 각이 일정하게 유지되거든요.

삼각형 | 일상의 것들 | 텔유 레터 | 텔유

그리고 삼각형은 충격 분산이 잘 이뤄지는데요. 외부의 힘이 고르게 분산되는 특성이 있어 안정적인 기능을 하기에 적합합니다. 이 특성을 잘 살린 게 ‘트러스 구조’와 ‘탑 구조’라는 건데요. 예를 들면 종이에 트러스 구조를 적용한 사례는 골판지가 있겠고, 교량이나 철탑 등이 이런 구조로 건축되는 경우가 많죠.


윌리엄 페인터는 이런 특성을 살려보고자 발명 중인 병뚜껑에 삼각형을 입혀봅니다. 원 위에 삼각형 여러 개를 겹쳐 놓고 그 꼭짓점을 살린 디자인으로 만든 거죠. 그렇게 8개의 삼각형을 겹쳐 총 24개의 톱니를 만들어 봤는데, 너무 꽉 끼는 바람에 반려. 6개의 삼각형으로 만든 18개 톱니는 너무 헐거워서 반려. 그렇게 7개의 삼각형으로 만든 21개의 톱니 모양 뚜껑이 너무 딱 맞았습니다. 그게 지금까지 국제 표준으로 쓰이는 디자인이 됐을 정도로요. 그리고 이 모양이 마치 왕관과 같다 해서 ‘크라운 캡’이라 불리죠.



왜 하필 ‘유리병’만 이 뚜껑을 쓸까?

결론부터 말해서, 다른 소재로 만든 용기들은 크라운 캡을 사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선 페트병의 경우엔 일반적으로 돌려 사용하는 나사형 뚜껑을 사용하는데, 이 나사형 뚜껑을 유리에 사용하게 되면 유리가 마모되는 바람에 밀폐력이 감소하게 됩니다. 반면 페트 소재는 탄성이 있어 반복적인 여닫음에도 물리적인 변형이 없기에 나사형 뚜껑이 잘 어울리는 거고요.

유리병 | 일상의 것들 | 텔유 레터 | 텔유

ⓒmade-in-china

의 경우엔 아시겠지만, 제조 과정에서 뚜껑이 병과 함께 일체형으로 밀봉돼요. 크라운 뚜껑을 사용할 그림도 잘 그려지지 않죠. 그 외 다른 용기(락앤락 등)들은 기본적으로 반복적으로 여닫는 상황을 염두에 두기에 일회성인 크라운 캡과 당연히 어울리지 않고요.


그러면 ‘왜 굳이 유리병에 크라운 뚜껑을 쓰냐?’라고 하실 수도 있겠는데요. ‘맛’을 포기할 수 없는 거라고 할까요? 일반적으로 유리병에 든 음료가 더 맛있다는 평가가 많아요. 그런데 그게 정말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닌 게요.


유리는 비활성적 재질입니다. 쉽게 말해, 유리 맛이 음료에 섞이지 않아요. 플라스틱이나 캔의 경우엔 흔치 않긴 해도, 일부 감각이 뛰어난 소비자분들은 페트 맛이 섞였다거나 금속 맛이 섞였다는 느낌을 받기도 하거든요. 유리는 이런 게 전혀 없어요. 그리고 유리병과 크라운 캡의 조합은 용기 내부 압력과 그 보존을 장기적으로 함에 있어 가장 효과가 뛰어난 조합이라고 평가됩니다. 맛이 제일 순수하게 유지된다는 거죠.


그러니까 유리병에 든 음료는 처음부터 엄청 맛있으라고 유리에 담았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맛에 가장 큰 중점을 뒀으니, 다회용으로 쓰기보단 개봉 직후 바로 소비하는 걸 의도했기에 일회용 뚜껑의 단점도 사라지게 되는 거고요.


어떠세요. 오늘 퇴근 후엔 맥주 한 병 시원하게 따고 싶지 않으신가요?

오늘 글이 더 넓은 시야 장착에 도움이 되셨다면 좋겠습니다.


다음 주에 또 만나요:)

🐯 콘텐츠 디렉터 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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