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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것들 | 텔유 레터 #44 바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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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것들 | 텔유 레터 #44 바코드


텔러비님은 혹시 일상 속에서 ‘이건 왜 이렇게 생겼지? 저건 또 왜 저렇게 생겼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신 적 있나요? 가령, ‘바코드 디자인은 왜 선으로만 이뤄져 있을까?’ 처럼요. 저는 이런 일상 속 디자인에 대해 궁금증이 많은 편인데요.


제가 평소와 다름 없이 편의점에서 단백질 음료를 사려고 하는데 진열대에 물건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직원분께 여쭤보니까 갑자기 척척 바코드 리더기를 가져와서 바코드를 찍고, 계산도 먼저 하더니 창고에서 꺼내 와서 쥐어주셨어요. 이 과정 속에서 제품은 없었습니다. 제품은 마지막 결과에만 등장한 거예요.

바코드 | 세모브 | 세상의 모든 브랜드 이야기 | 텔유 | 텔유레터ⓒistock

그 때 문득 이 바코드 세상 속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세상 모든 물건들이 소비자 입장에서야 제품명(가명)으로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저 계산대 너머의 세상에서 쓰이는 건 바코드(진명)라는 거죠.


그러면 여기서 생기는 궁금증. 사람 이름은 다 다르잖아요? 김땡땡 이땡땡, 미국에선 땡땡 존스, 데이비드 땡땡 처럼 한 국가 내에서도 다른데, 해외로 가면 훨씬 차이가 많이 납니다.


그런데 제가 해외 그 어느 나라를 가봐도 바코드 디자인은 표준화가 되어 있단 말이죠? 이 정도로 전 세계 표준이 맞춰지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말이에요.


오늘의 첫 번째 질문, 도대체 바코드는 어떻게 디자인했길래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했을까요? 다른 모습으로 디자인할 수는 없을까요?


그리고 두 번째 질문, 바코드 스캐너는 왜 다들 ‘빨간’ 빛을 쏠까요?

바코드 | 세모브 | 세상의 모든 브랜드 이야기 | 텔유 | 텔유레터

ⓒcognex

여러 사례를 조사해보니, 공통점이 있더라고요. 대부분의 디자인에는 그에 맞는 이유가 있고, 그 이유는 상당수가 ‘기술’ 또는 ‘문화’였어요. 아, 기술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불편’을 해소하는 정도는 되고요. 그리고 문화는 사람들의 인식을 형성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하죠?


그래서, 일상의 것들을 읽으실 땐 ‘불편함을 해소시키는 기술과 그 기술에 어울리는 디자인’, 그리고 ‘당시 시대상과 문화’에 초점을 맞춰보면 더욱 유익할 것 같습니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요!) 그럼 오늘도 잘 부탁드려요:)


오늘의 주제는 ‘바코드’입니다.



처음엔 동그란 모양이었어

사실 바코드가 만들어진 시기는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1948년 미국 대학원생이 ‘지역음식 축제 행사장 참석자들의 정보를 자동으로 읽을 수는 없을까?’라고 생각한 것에서 출발했으니까요.


1948년 미국,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한창 경제가 성장하던 시기였어요. 당연히 물류 유통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수요와 공급이 모두 넘쳐나던 시기죠. 이 시기, 필라델피아에 있는 드라셀 공과대학에 한 문의가 날아옵니다. 식품 체인점 사장님의 문의였는데요. 물건은 넘쳐나는데 매번 계산할 때마다 값을 외우는 건 물론이고, 직원이 그만 두면 인수인계도 쉽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불쌍한 대학원생 버나드 실버(Bernard Silver)와 노먼 조셉 우드랜드(Norman Joseph Woodland)가 이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자외선 잉크를 사용해서 평소엔 눈에 안 보이게 만들어 보려고 했는데, 실질적으로 사용되진 못했고요. 그 다음 모습은 무려 원형이었습니다. 어떤 방향에서 봐도 읽을 수 있게요. 모스부호에서 영감을 받은 버나드 실버와 우드랜드는 굵고 얇은 선을 활용해 원을 그린 거예요. 단, 컴퓨터가 쉽게 읽을 수 있게 이진법 0과 1을 이용해서요. 검은색 얇은 선이 ‘0’, 검은색 두꺼운 선이 ‘1’, 좁은 흰색 공간은 ‘띄어쓰기’, 넓은 흰색 공간은 ‘대쉬(-)‘로 말이죠.바코드 | 세모브 | 세상의 모든 브랜드 이야기 | 텔유 | 텔유레터

ⓒ나무위키

이때까지만 해도 개발자들은 완성형이 원형이라고 생각했죠. 1952년 10월 7일 미국 특허 2,612,994호로 특허를 출원합니다. 이름은 분류 장치 및 방법(Classifying Apparatus and Method)이었어요. 별명은 황소의 눈, Bullseye Code라고 불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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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egen

그런데 우리가 쓰는 바코드는 이 모양이 아니죠? 바코드는 첫 기획 이후 무려 26년 만인 1974년 6월 26일 처음으로 사용돼요. 기존의 원형 디자인은 상용화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원형 코드는 그 원이 정확하게 그려져야 정보를 읽을 수 있었는데요. 당시의 인쇄 기술로는 그 복잡한 원을 일관된 품질로 인쇄하기 어려웠거든요.


그리고 인쇄에서뿐만이 아닙니다. 원형 디자인은 읽을 때도 문제였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스캐너 불빛을 보자면 일자로 빨간 레이저가 나오는 걸 보신 적 있나요? 이게, 바코드 스캐너가 판독을 직선적으로 한다는 건데요. 원형 디자인의 코드를 읽을 땐 정확히 그 레이저를 원의 중심부에 맞춰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원형 디자인은 실질적으로 사용하지 못한 채, 여러 형태의 코드들이 이 시장에 도전하는데요. 이때 대표적으로 등장한 게 선형 바코드. UGPIC라는 시스템이에요. 원형의 문제점을 선형이 모두 해결해줄 수 있었거든요. 선형은 인쇄할 때도 뒤틀릴 일이 거의 없고, 바코드 레이저를 어디에 쏴도 레이저 직선 안에 모든 선들이 빠지지 않고 찍힐 수만 있다면 인식이 되니까요.



바(BAR)로 만든 코드(CODE)이다

그렇게 선형 디자인의 바코드가 조금씩 자리하고, 이어서 IBM이 이때 바코드 산업에 뛰어듭니다. 아까 그 원형 황소의 눈을 개발한 우드랜드가 IBM에 입사했거든요. 우드랜드는 조지(George J. Laurer)와 함께 UGPIC의 복잡성을 줄이고 더 널리 활용할 수 있는 구조로 새로운 바코드를 개발했습니다. 그게 바로 현대 바코드 표준의 기반이 된 UPC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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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 codes talk

다만, 유럽에서는 UPC를 기반으로 EAN(European Article Number)이라는 자체 표준을 개발해버리는데요. 그래서 1990년에는 UPC와 EAN이 상호 호환되도록 설계를 하고, 전 세계적으로 바코드 시스템이 통합됐습니다. 2005년에는 아예 GS1(Global Standards One)이라는 국제 표준화 기구가 설립되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죠.



정형화된 디자인

그런데 표준은 표준이고, 제가 조사를 하다 보니 재미나게 생긴 바코드들이 있더라고요. 카메라 모양을 형상화한 모습, 초코바 포장을 벗긴 모습, 농구공이 그물망에 들어가는 모습 등등 다양한 바코드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특이한 디자인의 바코드, 인식도 되는 걸까요? 정답은 충분한 연결된 부분들만 읽힐 수 있다면 ‘가능하다’입니다. 이게 바로 좀 전에 다뤘던 선형 바코드의 특장점인 거예요. 선 하나하나의 길이나 생김새가 중요한 게 아니라 스캐너의 직선 안에 그 점들만 인식되면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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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pinterest.com

그러면 왜 물건들에 이렇게 예쁜 디자인의 바코드를 만들지 않는 걸까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거죠. 바코드는 말 그대로 제품을 식별하기 위한 기능적인 요소만 갖추면 충분하니까요.


이어서, 바코드가 흑백인 이유도 같아요. 흑백 말고도 다른 컬러로도 디자인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안 쓰는 이유는 효율과 비용 때문이죠.


바코드는 바탕색(주로 흰색)과 막대색(주로 어두운 검정)의 명암 차이를 이용하여 판독을 하는데요. 리더기가 주로 적색의 레이저광선으로 인식을 하기 때문에 컬러로 만들 경우 인식이 안되고 불확실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채색도 디자인의 일부인데, 채색으로 인해 기능을 위한 디자인에서 기능이 저해된다는 문제가 생기는 거죠. 심지어 검정 잉크가 가장 저렴하니, 다른 색상으로 바코드를 만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눈치 채셨겠지만 흰색은 빛을 많이 반사하고, 검은색은 빛을 많이 흡수한다는 사실 알고 계시죠? 그래서 여름에 검은색 옷을 입거나 검은색 차를 타면 유독 덥잖아요?


바코드의 원리도 이와 같습니다. 바코드 리더기는 빛을 분사해서 인식을 하죠. 그래서 바코드의 검은색 부분은 그 빛을 흡수하고, 흰색 부분은 빛을 반사하는 방식으로 이진법이 인식이 되는겁니다.



바코드 스캐너는 빨강색

자 그리고 오늘의 두 번째 질문. 바코드 스캐너가 왜 빨간색이냐면 말이죠. 대답이 조금 싱거운데요. 이 빨간색 레이저를 이용하는 게 기술적으로나 비용적으로나 저렴해서예요.


그래도 그 내용은 짭짤합니다.


빛에는 파장이 있고 그 색깔별로 파장의 길이가 달라지는데, 빨간색은 630~670nm로 그 파장의 길이가 가장 깁니다. 이 길이가 긴 게 뭐가 특별하냐면요. 공기 중에서 산란되거나 흡수되는 정도가 적다는 메리트를 가지고 있는 거예요. 발표할 때 쓰는 레이저 포인터가 대표적인 예시인데 꽤나 멀리서 쏴도 빛이 흐트러지지 않고 명확히 표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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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pik

이게 바코드 리더기에도 똑같이 작용하는 거예요. 낮은 에너지로도 명확하게 빛을 내주고, 사용자 입장에서도 다른 색상 빛보다 더 적은 에너지를 사용하니 시각적 부담도 덜 하고요. 무엇보다 산란되는 정도가 적다는 특징 때문에 과거의 기술로 만들던 리더기들은 낮은 기술력으로도 잘 작동하는 빨간 빛 리더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니 지금까지도 그 산업이 자리 잡아 생산 비용이 적게 들죠.


다만, 일부 바코드는 녹색이 필요할 때도 있긴 해요. 제가 해군 출신인데, 한밤중에 선박끼리 부딪히지 않기 위해서 신호를 보낼 때도 초록색 레이저를 사용하거든요? 이게 초록 빛의 파장이 인간의 눈에 가장 민감한 영역이라서 그렇다고 해요. 그러니까 햇빛이 강한 야외 같은 경우엔 초록색 빛을 더 인지하기가 쉬워서 사용하는 경우가 있죠.


그리고 빨간색 배경에 인쇄된 바코드라던지, 반짝이는 표면에 인쇄된 바코드에도 녹색 레이저가 더 정확히 작동합니다. 초록색 레이저는 반사성이 뛰어나다는 특징이 있거든요.



QR의 대체는?

마지막으로, 바코드의 자리를 위협하는 디자인이 등장했어요. 바로 QR코드. QR 코드는 바코드 대비 100배 정도의 정보를 더 담을 수 있습니다. 인식 속도 빠르고 인식률 높고, 코드가 조금 훼손 되어도 상당 부분 내용 인식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는 만능 디자인이죠. 그런데, 바코드에 비하면 장점이 많지만 모든 바코드가 QR로 바뀌는 일은 없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 이미 전세계에 바코드 생산 업체와 리더기들이 즐비한데, QR코드로 바꾸기엔 그 비용이 상당할 뿐더러 바코드 디자인은 이미 그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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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모아

어떻게 보면, 이런 생각도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게 무슨 디자인이냐’라고요. 그런데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세상에 그냥 원래부터 당연히 그렇게 생긴 건 없었다고요. 일반적으로 예술이라 부르는 것과는 달리 디자인은 그 ‘기능’을 살리는 게 첫 번째 목적이라고 말입니다.


그럼 바코드 이야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즐거우셨다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 콘텐츠 디렉터 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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