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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것들 | 텔유 레터 #32 넥타이라고 누가 먼저 불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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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것들 | 텔유 레터 #32 넥타이라고 누가 먼저 불렀을까?


여러분은 넥타이를 좋아하시나요? 아마 학창 시절에 간편하게 맸던 지퍼형 넥타이는 기억하실 것 같습니다. 저도 나름 그 넥타이를 매면 뭔가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들고 괜히 넥타이 삼각형 부분을 좌우로 흔들면서 폼을 잡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성인이 되고 나서 매는 넥타이는 긴 끈 형태로 매듭과 길이 조절 또한 직접 해야 하는데요(그래서 그런지 유튜브에 넥타이 쉽게 매는 팁이 굉장히 많습니다…🤣). 정장과 격식의 상징이기도 하죠! 과연 언제부터 사용하기 시작했을까요? 오늘의 이야기는 넥타이입니다.



넥타이는 어디서 시작?


로마 병사들이 갑옷 안에 착용한 포칼, 영문으로는 focale

로마 병사가 착용한 '포칼' | ⓒ Roman in Britain


넥타이가 처음 쓰였던 곳은 로마 제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로 ‘포칼(focale)’이라고 불렸던 최초의 넥타이입니다. 포칼은 멋보단 기능성이었어요. 로마 병사들이 갑옷을 입을 때 목 부분에 상처가 생겼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양모로 만든 스카프를 두른 것이었습니다. 덕분에 병사들은 전투할 때 피부가 쓸리지 않았다고 하죠.

자신들이 넥타이의 시초라고 주장하는 또 다른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중국인데요. 중국은 진시황의 무덤 옆 ‘병마용’에서 넥타이가 처음 발견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기원전 220년경에 만들어진 이곳에서 우두커니 서있는 진흙 병사들의 목에 넥타이와 유사한 스카프들이 매어져 있었는데요. 해당 스카프는 당시 직급과 계급에 따라 길이가 달랐다고 합니다(계급이 높으면 끈이 길었다고 해요). 그렇게 중국은 “넥타이의 시초는 우리다!”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지금과 같은 넥타이는 언제?


크로아티아의 세계 크라바트의 날을 기념한 경비병 교대식 행사, 붉은 크라바트가 인상적이다.

크로아티아의 세계 크라바트의 날 행사 | ⓒ CRAVAT CLUB


그럼 지금과 같은 넥타이는 언제 만들어졌을까요? 때는 1618년, 당시 1648년까지 했던 30년 전쟁에서 처음 등장했습니다. 신성 로마 제국과 독일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유럽의 모든 국가가 참여한 전쟁이었죠. 이 국가 중 프랑스 동맹군으로 크로아티아의 병사들이 넥타이를 매고 출전했는데 파병 갔던 남편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내들은 빨간색 스카프를 매 주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 스카프는 지혈할 때 전쟁에서 유용하게 쓰였다고 하죠.

여기서 우연으로 인해 넥타이의 명칭이 정해지게 됩니다. 전쟁을 마치고 승리한 프랑스군은 개선 퍼레이드를 했습니다. 크로아티아 병사들이 개선 군으로 들어오고 있을 때 당시 국왕이었던 루이 13세는 크로아티아 병사들이 매고 있는 빨간색 스카프가 궁금했죠. 이에 빨간색 스카프가 무엇인지 신하에게 물었는데 신하는 그것을 크로아티아 병사들을 물어보는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그렇게 크로아티아 병사라는 뜻의 ‘크르바타’라고 얘기해 주었고 이것이 프랑스어로 ‘크라바트(Cravats)’가 되어 당시의 넥타이이자 스카프의 대명사 크라바트가 되어버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럼 넥타이라는 명칭은 어디서 온걸까?


영국 찰스 2세의 초상화 | 브랜딩 텔유 | 텔유어월드 | 텔유레터

찰스 2세 | ⓒ 위키피디아


영국 국왕이었던 찰스 2세는 유럽에서 유행하는 모든 화려한 것은 다 해봐야 하는 엄청난 바람둥이였습니다(여담으로 찰스 2세의 주치의는 국왕이 너무 바람둥이라 건강이 걱정되어 피임도구를 만들어 줬는데 그 주치의의 이름이 바로 ‘콘돔 경’이었죠). 찰스 국왕과 영국인들은 프랑스에서 둘렀던 크라바트가 마음에 들었고 “우리도 매고 다녀보자!”라고 하며 유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프랑스와 영국은 사이가 안 좋았죠. 찰스 2세는 프랑스와 같은 크라바트라는 이름을 쓰기 싫었습니다. 그는 목에 두르는 타이라는 뜻의 ‘넥타이’라고 이것을 명칭하기로 했고, 그렇게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근대 넥타이 문화의 시초


패션을 사랑했던 에드워드 8세, 윈저공의 남다른 패션감각을 보여주는 이미지 | 텔유어월드 | 텔유레터 |브랜딩텔유

에드워드 8세의 남다른 패션감각 | ⓒ 나무위키


사랑을 위해 왕위를 포기했던 한 남자가 있습니다. 영국의 에드워드 8세 윈저공인데요. 그는 패션에 일가견이 있었는데 당시 영국 패션 유행을 선도할 정도였다고 하죠. 에드워드 8세 이전의 와이셔츠는 칼라 부분이 뗐다 붙였다 하는 탈부착식이었는데, 에드워드는 애초에 제작할 때 셔츠에 칼라를 붙여서 만들라고 지시하고 추가로 칼라의 양쪽의 부분을 삼각형으로 만들게 했습니다.

이에 지금 형태의 와이셔츠가 나오게 되었는데…(이 부분은 추후에 와이셔츠 편에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어찌 되었건 넥타이와 셔츠의 칼라는 떼놓을 수 없으니까요! 이렇게 셔츠를 만들어 놓고 보니 “넥타이로 포인트를 줘볼까?” 하여 매기 시작했던 것이 현대 넥타이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묶는 법 중에 유명한 ‘윈저 노트’는 에드워드 윈저 공에서 따온 것이기도 하죠.



넥타이의 디자인과 패션


복장과 분위기에 따른 여러가지 넥타이 매듭법을 제시하는 이미지

복장과 분위기에 따른 넥타이 매듭법들 | ⓒ BOWS-N-TIES


넥타이는 다양한 매듭과 형태가 있죠. 넥타이의 보조개라고도 불리는 딤플(dimple)이라는 것까지 생겨날 정도니까요. 이는 다양한 장소와 문화에 타이 문화를 접목하면서 여러 가지의 매듭법과 디자인이 생겨났다고 생각합니다. 에드워드 윈저공을 지나 프랑스와 영국에는 ‘댄디즘’이라는 문화가 유행했었는데 미니멀리즘, 최소한의 단정함에서 패션을 추구하는 문화였다고 합니다. 이런 댄디즘 패션에서는 포인트를 줄 수 있는 부분은 타이가 묶이는 칼라와 타이 부분의 역삼각형 부분뿐이었어요.

이에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 각종 화려한 타이를 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패션에 가장 잘 맞는 형태의 매듭을 짓기 시작하며 여러 가지의 매듭법이 탄생하게 되었죠.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은 검 형태를 표방한 끈 형태로 넓은 부분을 대검, 좁은 부분을 소검이라고 칭하는 타이입니다. 이외에도 턱시도에 사용되는 일정한 너비의 형태인 스톡 타이, 나비넥타이라고 불리는 보타이 등도 현대에 들어 다양한 패션으로 적용되고 있죠.

오늘은 간단히 넥타이의 역사를 알아보았네요! 정통 넥타이는 처음 사용할 때 매듭 매기가 너무 어려워서 애먹었던 기억이 있는데…적응하고 나면 다양한 매듭법으로 스타일을 내기가 좋은 것 같습니다! 오늘의 넥타이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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