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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것들 | 텔유 레터 #27 개는 언제부터 사람과 함께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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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것들 | 텔유 레터 #27 개는 언제부터 사람과 함께했을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요즘은 반려견과 산책하는 사람들을 쉽게 마주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반려동물 그 중에서도 반려견을 키우는 인구가 많아졌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저 또한 개를 굉장히 좋아합니다(이상하게 개들도 저를 보면 엄청 핥던데 좋아하는거겠죠...?...걸어다니는 햄 아닙니다). 많은 설 중에 ‘강아지의 조상은 늑대다, 강아지는 늑대와 같은 종이다.’ 와 같은 이야기가 있는데 정말일까요? 우리는 늑대와 함께하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개들과 인류는 언제부터 함께했을까요? 오늘날 인류의 친구인 반려견, ‘개’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인간과 늑대는 경쟁자였다?


위즈위드의 블록코어 룩북

타살리나제르 벽화의 인간과 사냥 중인 개 / ⓒ 위키미디어


인류가 개와 함께한 시기를 두고는 아직도 이견이 많습니다. 정확하게 특정 짓기는 어렵지만 전 세계의 고고학자들이 발견된 흔적들로 추정하기에 3만 3천년에서 많게는 4만년 전부터 인류와 함께했다고 추정하고 있죠. 이견은 많지만 하나로 좁혀지는 주장은 늑대의 조상 때부터 그들이 인류에게 길들여졌다는 것이죠. 실제로 개와 늑대는 유전적으로 0.04%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알려졌습니다.

옛날 옛적 인류도 수렵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던 시기에는 놀랍게도 늑대와 인류가 먹이사슬 계층에서 경쟁자였는데요. 두 종족의 습성이 굉장히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무리를 이루고 사냥하며, 효율적인 사냥 방식동료에게 공유하면서 협력하는 점도 그러하죠. 또한 자신들보다 훨씬 덩치가 큰 동물을 힘이 빠질 때까지 집요하게 추격하며 공격하는 방식도 비슷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경쟁자였던 늑대들을 어떻게 개가 될 수 있었을까요?



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


토트넘 홋스퍼의 손흥민

사냥을 나가는 인류와 늑대 / ⓒ Living on Earth


이에 대해선 두 가지의 가설이 존재하는데요. 첫째는 인류의 경쟁자로서 주변의 늑대를 몰아내거나 죽이다가 그들의 새끼만 데려와서 키웠다는 설입니다. 그 중 말을 잘 듣는 개체만을 살리고 나머지는 죽여서 세대를 거치며 잘 따르고 온순한 개체들만 남았다는 주장인데요. 하지만 늑대 새끼들은 생후 20일만 지나도 사회화가 거의 불가능 했기에 많은 반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몽골에서는 생후 얼마 안 된 늑대 새끼를 데려오는 문화가 종종 있다고 하네요.

두 번째 가설은 사람과 식성도 비슷했던 늑대들이 인류가 먹다 버린 음식물을 먹다가 함께하게 되었다는 설입니다. 늑대는 경계가 심한 만큼 호기심도 많다고 해요. 그렇기에 사람들이 버린 음식을 먹으러 오면서 종종 마주치기도 했겠죠? 또한 당시 인류는 주거하는 터를 옮겨 다녔지만, 분기마다 한 번쯤 옮기면서 다녔기 때문에 충분히 정들 시간이 있었다는 거죠. 결정적으로 빙하기가 덮쳐 왔을 시기에는 늑대들이 사냥할 사냥감은 더욱 부족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니 먹을 것이 있는 사람의 거주지를 자연스럽게 찾게 되었을 겁니다.

이렇듯 늑대는 인류와 함께하며 인류에게 먹이를 얻어먹고 살게 됩니다. 야생동물로부터 인류를 지키고 더 나아가 농경이 발달하면서 포식자들로부터 가축을 보호하거나 함께 사냥을 하기도 했죠. 늑대는 그렇게 인류와 함께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대 이집트, 고대 로마 때부터 반려견은 있었다


롯데 자이언츠 유니폼을 매치하여 입은 모델의 룩북, 무신사, 무신사 스토어

고대 이집트의 개 '테셈' / ⓒ 위키미디어


아니 이것까지 또대 이집트 또대 로마라고…? 이 부분은 저도 놀랐습니다. 대체 문명이 얼마나 발전했던걸까요…? 이집트에서 개의 가축화는 기원전 6천 년경에 이루어졌습니다. 이 시기부터 개는 단순한 사냥 도구나 경비원이 아닌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중요한 동반자 역할로 자리 잡았죠. 특히 고대 이집트에서는 개가 파라오와 귀족들 사이에서 큰 사랑을 받았는데요. 심지어 왕과 함께 미라로 만들어져 무덤에 함께 묻히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습니다(살아있어도 파라오가 죽으면 같이 죽어서 묻혀야했던게 아닐까 생각은 듭니다만…).

고대 이집트는 개를 신격화하기도 했습니다. 이집트의 벽화에는 검은 개 머리와 인간의 몸을 한 ‘아누비스’라는 죽은 자를 심판하는 신이 자주 등장하는데, 개가 이집트인들의 정신적인 부분에도 많은 비중을 차지했음을 보여줍니다. 또 벽화 속의 개들은 목줄을 하고 있어서 이들이 이미 완전히 가축화되었음을 알 수 있죠.

이어서 고대 로마에서는 개에게 역할이 부여됩니다. 로마인들은 개를 사냥과 경비는 물론, 전쟁터에서는 군견으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때로는 시각 장애인을 돕는 안내견의 역할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폼페이 유적에서 발견된 그림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이 그림에는 개가 시각 장애인을 이끌고 가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죠. 로마인들은 개를 매우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들이 죽으면 무덤과 묘비를 세워주는 등의 예우를 하기까지 말입니다. 이처럼 고대 이집트, 로마 시대부터 개는 인간의 가장 가까운 동반자로서 함께 살아오고 있었습니다.



중세 시대, 개들의 암흑기


뉴진스, 뉴진스 어텐션에서의 블록코어 룩

중세시대의 광견병이 걸린 개 / ⓒ 위키피디아


5세기에 로마가 멸망하면서 개들의 좋은 시절은 막을 내렸습니다. 중세는 인간뿐만 아니라 개들에게도 암흑의 시대였는데 이 시기에는 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해졌습니다. 신으로 묘사되기도 하고 특별한 예우를 받던 전과는 다르게 중세 유럽에서 개는 이교도의 상징으로 간주되었죠. 성경에서도 개는 이기적이고 청결하지 못한 부정적인 이미지로 그려졌는데 ‘들개’ 정도로 생각하시면 좋겠네요. 이러한 인식은 5세기부터 8세기 사이, 중세 초기 유럽 사회에서 특히 극심했습니다. 개를 기르기만해도 이교도로 몰렸죠.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를 버려야만 살 수 있었습니다.

주인에게 버려진 개들은 숲으로 숨어들었는데 이는 대규모 광견병(공수병) 유행을 초래했습니다. 당시 교회는 병든 개의 털을 물린 상처에 넣고 기도를 담은 부적을 처방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황당한 처방이지만 현재도 치사율이 99%에 달하는 광견병이기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을거라 생각됩니다. 이렇게 되자 주인 없는 개는 무조건 잡아 죽이는 것이 사람이 살 길이었죠. 이 과정에서 광견병에 걸린 사람들이 보이는 침흘림과 갑작스러운 공격성 때문에 늑대 인간 전설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광견병의 유행은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개를 내다버리게 만들었고 이는 병의 확산을 가속화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졌습니다.

이후에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도 전적이 있었던 탓인지 개들에게 불똥이 튀어 개가 전염병을 퍼뜨리는 원인으로 지목되었습니다. 또 다시 유럽 전역에서 개들이 몰살당하는 일이 벌어졌죠. 개와 함께 쥐를 잡는 천적인 고양이도 사라지면서, 광견병과 같이 흑사병도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마녀사냥도 성행했는데 개를 기르거나 거리의 개에게 먹이를 주는 것만으로도(?…언제까지…개 탓을…) 마녀로 의심받아 화형을 당할 수 있었습니다. 개들 역시 마녀들과 유사한 존재로 간주되어 대거 화형에 처해지는 중세의 암흑기를 겪어야 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 개의 부활


뉴진스, 뉴진스 어텐션에서의 블록코어 룩

르 리브르 드 샤세 (사냥의 책) / ⓒ 위키피디아


끔찍한 중세가 끝이나고 개들의 운명도 다시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접어들면서 개는 왕족과 귀족들 사이에서 부와 지위를 과시하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는데 그레이하운드와 같은 사냥개는 왕자들에게 최고의 선물이었죠. 연회장에서 커다란 개들이 진주와 보석 목걸이를 두르고 어슬렁거리는 장면이 종종 그림 속에 묘사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장면은 당시 개가 단순한 동물이 아닌 부유층의 생활 속에서 그들을 과시할 수 있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죠. 이에 개들은 연회에서 남은 음식을 받아먹으며 귀족들의 생활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습니다.

이 시기에 '애완견'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개들은 여기저기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귀족 가문의 문장이나 심볼에도 사용되었죠. 그러나 아직 부정적인 시선은 남아있었습니다. 개에게 주는 음식이 가난한 이들에게 가야 할 음식이라는 비난을 했고 교회에서는 성직자들이 개를 기르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헌신을 방해한다는 이유였다고 하는데요. 그럼에도 수녀들은 공공연히 교회에서 개를 키우기도 했고 18세기에는 일반인들 역시 이교도나 마녀로 몰릴 두려움 없이 개를 기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시 개를 키우는 것이 대중화되면서 개의 개체수 또한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오죽했으면 17세기 영국 신사들에게 필수품이었던 지팡이 패션이 런던 시내에 넘쳐나던 개들을 쫓기 위한 필수품이 되어버렸죠. 개에게 옷을 입히는 것도 생각보다 오래되었습니다(사람의 심리는 다 비슷한가봐요…🤣). 패션의 중심지인 19세기 파리가 원조입니다. 파리 사람들은 개에게 조끼를 입히기도 하면서 주인 또한 똑같은 옷으로 커플룩을 맞추어 입기도 했습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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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로 인해 멸종 된 턴스핏 독 / ⓒ 위키피디아


뉴진스, 뉴진스 어텐션에서의 블록코어 룩

키친 독으로 챗바퀴를 돌리고 있는 턴스핏 독 / ⓒ 위키피디아


하지만 모든 개들이 부유한 삶을 누린 것은 아닙니다. 귀족들은 귀여운 녀석들은 애완견으로, 전투나 사냥에 특화된 녀석들은 따로 모아 ‘투견’으로 키워 싸움을 붙여 오락거리로 즐겼죠. 또 당시에 부유한 가정에는 ‘키친 독’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전기구이 통닭과 같이 당시에는 꼬챙이에 고기를 끼워 불에 돌려가며 익히는 방식이었는데, 챗바퀴가 연결되어 있었죠. 이 챗바퀴를 돌리는 개가 키친 독이었습니다. 다행히 19세기 초에 영국에서 최초로 동물학대 방지법이 제정되면서 이러한 가혹 행위는 사라지게 되었죠.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계속되었는데요. 품종 개량근친 교배 등이 있습니다. 늑대도 많은 종이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늑대’라는 비슷한 인상을 줍니다. 하지만 개의 경우 인간에 입맛에 맞도록 좀 더 귀엽고 작게 만들거나 미용의 이유로 귀나 꼬리를 자르는 등의 비정상적인 교배가 많이 일어났죠. 실제로 같은 종들의 과거 사진보다 현재가 좀 더 약해지고 생김새도 퇴화한 종들도 보인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생겨난 질병들도 적지 않으니까요.

오늘은 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았는데요. 바라볼 땐 그저 행복하고 귀여워 보이는 녀석들도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니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인간이 미안해…🥹). 오늘 준비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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