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랜드 사랑방 | 텔유레터 | #27 아크테릭스
텔러비님! 혹시, 등산 좋아하시나요? 그럼 등산복은요? 한동안 길거리에 보면 등산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이 정말 많이 보였어요. 산도 들도 없는 회색빛 도심에서요. 바람막이나 가방은 기본이고 신발, 고글이나 신기하게 생긴 자켓까지 당장 등산하러 가도 손색 없을 차림을 한 채로 돌아다니는 게 유행이었는데요.
바람막이 / ⓒarcteryx
이 트렌드, ‘고프코어’라고 합니다. 2017년, 미국의 여성 온라인 잡지 <더 컷>에서 ‘놈코어의 다음은 고프코어다.’ 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어요. 고프코어는 하이커들이 즐겨 먹는 간식을 뜻하는 “Good OI’ Raisins and Peanuts”의 약자인 GORP와 과하지 않으면서도 편안하게 차려 입은 패션을 뜻하는 ‘놈코어(Nomcore)’의 합성어인데요. ‘과하지 않고 편안한’ 것이 포인트인데요. 한 마디로, 아웃도어 의류의 기능성을 도시 생활에 맞게 변형해서 일상적으로 착용하는 새로운 패션 트렌드였던 거죠.

gorp / ⓒcollectingCandy.com
그런데 말을 거창하게 해서 그렇지 사실 이 트렌드 우리는 익숙합니다. 이미 20년 전부터 한국에서는 비슷한 유행이 있었거든요. 음, 그런데 그때는 ‘고프코어’같은 말을 만들어서 쓰진 않았잖아요? ‘등골브레이커’면 몰라도요. 그러게요. 그때랑 지금이랑 똑같이 아웃도어, 등산복을 입는데, 뭐가 다른 걸까요?
일단 2000년대부터 유행했던 아웃도어 룩은 이름 그대로 정통 ‘아웃도어’제품을 착용했어요. 그러니까 ‘기능’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건데요.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노스페이스 패딩 같은 경우에도 손목에 박음질 되어있던 700, 800으로 급을 나누기도 했고요. 진짜 히말라야 등반에 착용하는 옷이라며 판매 홍보를 하기도 했죠. ‘대장급’이라며 급을 매겨 부모님 등골을 빨아먹기도 했고요.

등골브레이커 / ⓒmedium
그런데 최근 유행했던 고프코어는 아웃도어 룩과 달리 앞서 말했던 ‘놈코어’. 즉, 과하지 않으면서 편안하다는 특색과 함께 이전과 같은 기능성보다는 ‘멋’ 그 자체에 초점이 더 맞춰졌습니다. ‘내 옷이 더 좋네, 네 옷이 더 좋네’보단 누가 더 예쁘게 멋있게 힙하게 입었느냐가 중요하죠.
그리고 이 트렌드의 중심에 서있던 브랜드가 있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장인들이 만든 기술에 미친 브랜드입니다. 기능보단 패션이라면서 장인이라니, 말이 좀 다르죠?
아무튼 이 브랜드, 그럼 어떤 매력이 있길래 하나의 ‘트렌드’ 자체의 대표가 될 수 있었을까요?
글에 앞서, 영상으로 확인하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ryXzOdoIu8U&pp=ygUP7JWE7YGs7YWM66at7Iqk
탄생 스토리
오늘 소개할 브랜드는 1989년 캐나다의 밴쿠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창립자 데이브 레인(Dave Lane)은 클라이머였는데요. 시중에 판매되는 클라이밍 하네스가 아무리 써봐도 별로였던 거예요. 하네스란 안전 장치 장비인데요. 클라이머가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해주는 생존 필수품이죠.

하네스 / ⓒKlein Tools Korea
아무튼 이 장비부터 다른 용품들까지, 데이브 레인은 좀 더 고품질의 제품을 쓰고 싶었는데요. 아무래도 본인이 직접 만드는 게 빠를 것 같아서 브랜드를 만들게 됐다고 해요.
날아오르라 시조새여
우선 브랜드 이름과 로고부터 보자면, 초기 브랜드명은 '락솔리드(Rock Solid)'였어요. 바위, 단단한, 뭐 클라이머랑 잘 어울리는 이름이죠. 그런데, 데이브 레인이 만들고자 한 브랜드는 기존에 없던 아주 혁신적인 고품질 브랜드잖아요? 락솔리드는 이런 혁신적인 이미지는 아닌 것 같아서 이름을 바꾸게 돼요. ‘기존에 없던 진짜 최고의 품질을 가진 브랜드를 만들어보자, 남들 걸어다닐 때 우린 날아보자’라는 마음으로 새로운 이름을 생각하는데요.

ⓒBusiness Insider
아예 최초로 하늘을 날았던 동물인 시조새의 학명인 아키옵테릭스(Archaeopteryx lithographica)에서 따와서 '아크테릭스(Arc'teryx)'로 결정합니다. 이러한 진화,혁신의 상징을 브랜드 이름으로 삼아 버린 거죠. 말 그대로 혁신 그 자체가 되고자 한 거예요.
우린 최고만 만들자
아크테릭스는 시작부터 '기능성과 내구성을 모두 갖춘 최고의 아웃도어 장비를 만들자'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기술에 미친듯이 집착했는데요. 첫 제품은 가장 불만을 가졌던 하네스였어요.
1992년, 아크테릭스는 등반용 베이퍼 하네스를 출시하게 되면서 아웃도어계에 이름을 알리게 돼요. 하네스라는 제품 자체가 평소에는 안 쓰이지만, 떨어지는 그 한 순간을 위한 거잖아요? 그런데 그 떨어질 때마다 너무 아팠다고 해요. 신축성도 별로고 푹신하지도 않아서요. 그래서 열 성형 기법이라는 걸 사용하는데요.
열 성형이 뭐냐면, 열 받으면 부드러워지는 물질들이 있잖아요? 이런 물질을 이용해서 열을 먼저 가하고, 충분히 부드러워졌다 싶으면 냉각시키거나 진공 기술로 형태를 가다듬는 거죠. 원래 다른 하네스들은 이걸 몸이 닿는 부분이나 하중이 가해지는 부분에만 사용했는데, 아크테릭스는 이 과정을 하네스의 모든 부위에 다 적용을 시킨 거예요. 그래서 등반을 하다가 떨어져도 하네스의 모든 부분이 다 부드러워서 이 아크테릭스의 하네스를 처음 쓴 사람들은 ‘꼭 구름 위에 떨어진 것 같았다’고 해요. 그래서 ‘증기’라는 뜻의 베이퍼(vaper)라는 이름이 찰떡이었어요. 나이키의 축구화 베이퍼가 증기처럼 가벼운 점을 내세웠다면, 아크테릭스의 베이퍼는 증기, 구름의 그 폭신한 질감을 내세운 거죠.
기술에 미친 브랜드
기술력, 아크테릭스의 자존심이 아닐까 싶어요. 그만큼 아크테릭스는 기술에 미친 브랜드거든요. 베이퍼 하네스를 출시하면서 아웃도어 장비로 시작한 아크테릭스는 1995년, 이제 의류까지 만들어보기로 해요. 아크테릭스의 의류 라인업. 처음엔 기획부터 출시까지 6개월에서 1년 정도면 될 것 같았다는데요. 실제로는 제품 출시까지 무려 4년이 걸렸습니다. 준비 기간이 예정했던 1년에서 4년으로 늘어난 거죠. 그런데 이 4년 동안에요. 과장 좀 보태서 다른 브랜드 40년치만큼의 개발을 해요.
1996년에는 방수를 위해 업계 최초로 고어텍스 소재를 사용한 옷을 개발하는가 하면,(당시 고어텍스는 의료계에서만 사용됐다고 해요. 고어텍스는 방수 기능뿐만 아니라 내부의 습기를 외부로 배출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어 아웃도어 활동에 최적화된 숨겨진 소재였죠) 아우터의 특성상 지퍼로 물이 들어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YKK와 콜라보로 지퍼 자체를 개발해버리기도 하죠. 다른 브랜드들은 지퍼 덮개를 보통 썼는데, 이 덮개가 무겁기도 하고 거추장스러웠거든요.

지퍼 덮개 / ⓒFruits Family
여기서 끝이 아니라 마이크로 심(Micro Seam)이라는 바느질 공법을 도입하면서 방수 특화 바느질, 봉제파트에서도 기술 개발을 하고요.
아무튼 그렇게 시간을 알차게 보낸 1998년, 아크테릭스는 4년간의 연구개발 끝에 드디어 첫 번째 의류 제품인 알파 SV 자켓을 출시했어요. 이때부터는 혈이 뚫렸다고 해야 할지, 제품들이 쭉쭉 출시됩니다.
그리고 잘되는 브랜드들의 특징이 있죠. 군대로 납품되는 건데요. 물론 전통 브랜드들이 세계대전에 차출된 거지만요. 헌터의 장화, 롤렉스와 해밀턴의 시계부터 스팸, 벤츠, bmw, 칼하트까지 (혹시 관심 있으시면 저희 채널에 업로드 되어 있는 영상 확인해보시면 좋을 것 같고요 아무튼,) 품질 좋기로 유명한 브랜드들은 모두 세계대전에서 활약했습니다. 그러니까 군납이라는 건 품질이 좋다는 가장 큰 증거인데요.

leaf 라인 / ⓒarcteryx
아크테릭스가 2003년 출시한 리프(LEAF) 라인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처음부터 군인과 경찰을 위한 의류로 만들어진 라인인데요. 출시하자마자 미국 해병대의 백팩 20만 개를 납품했죠. 그리고 각종 밀리터리 의류를 제작하기도 했는데, 2023년 1월 20일부터는 경찰과 정부 기관 인증이 있어야만 구매가 가능합니다. 그만큼 성능에 집중했다는 뜻이죠.
고프코어의 중심이 되다
그런데, 고프코어는 기술보다 멋이 먼저라고 했잖아요? 이렇게만 보면 아크테릭스는 완전히 기술 중심적인 브랜드인데 어떻게 고프코어 트렌드의 중심이 될 수 있었을까요?
그 비밀도 사실 기술력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바로 아크테릭스가 개발한 소재 덕분인데요. 아웃도어 제품 입을 때, 이렇게 단단 바스락거리는 재질과 부들부들한 재질이 있다는 거 알고 계시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원래 아웃도어 제품들은 모두 단단한 제품들 뿐이었는데요. 아크테릭스가 최초로 부드러운 소재의 옷을 개발한 브랜드입니다. 그 소재가 바로 ‘소프트쉘’이죠.

하드쉘 / ⓒFjallraven Korea
기존의 뻣뻣하고 튼튼한 기능성 제품들은 험난한 지역에서 입기 위해 만든 옷이었습니다. 확실히 안전하기도 하고 성능도 좋았지만 불편했다고 해요. 그러니까, 완전 산악 전문가가 아니라 일반인들이 취미 생활로 등산할 때 입기에는 너무 과했던 거죠. 그래서 아크테릭스가 개발한 게 바로 ‘소프트쉘’인데요. 비교적 약하고 방수도 잘 안 됐지만, 그만큼 편하고 가벼워서 입문자들이 부담을 덜 수 있었다고 해요.
그리고 고프코어 트렌드에서 중요하다고 했던 점이 있었죠? ‘과하지 않고 편안한’이라고요. 2000년대 아웃도어 룩의 인기는 사실 ‘등산’이 실제로 유행했던 게 한몫했었거든요? 당시 90년대에서 00년대로 넘어오면서 주 5일제 시스템이 사회 전반적으로 확산되고, 직장인들이 야외 활동, 특히 레저활동 등산을 다니는 비율이 높아졌고 당연히 아웃도어 제품 소비량이 늘었어요. 여기서부터 시작된 아웃도어 룩 유행이 퍼졌다고 보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러니 당연히 제품의 기능적인 측면을 많이 볼 수밖에 없던 거죠.

주 5일제 / ⓒ대한민국 대표 공영미디어 KBS
그런데 고프코어의 유행에는 ‘등산’ 꼬리표가 딱히 붙고 있진 않아요. 코로나 전후로 ‘편한 옷’, ‘실용성 높은 옷’에 대한 소비량이 증가하면서 등산복 시장에 열풍이 불었다는 설이 유력하거든요.
그리고 마침 아크테릭스가 부드러운 소재를 만드는 데에도 일가견이 있잖아요? 패션 아이템으로 입기에 딱이었던 거죠. 그래선지 버질 아블로도 2020년 루이비통 파리 패션위크에서 루이비통이 아닌 아크테릭스의 옷을 입기도 했고요.

버질 아블로 / ⓒesquire
그럼 아크테릭스가 편하기만 해서 트렌드의 중심이 됐었냐고요? 그럴 리가요. 편하기만 했다면 버질 아블로가 입었을 리가 없죠. 아크테릭스는 심플한 디자인도 예쁘지만 기술력만큼이나 ‘색’에 미친 브랜드예요. 간단히 레드, 블루 할 수 있는 걸 ‘옥스블러드’, ‘립타이드’같은 특이한 컬러네임을 붙이죠. 실제로 이 색들을 보면 오묘하게 그냥 빨강 파랑이 아닌데요. 아크테릭스는 컬러 전담 팀을 따로 꾸려서 그 팀은 거의 1년 내내 제품을 무슨 색으로 출시할지 고민한다는데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신선한 색을 찾는 데 혈안이라고 해요. 기능성부터 색상까지 모든 부분에 진심이니, 트렌드가 왔을 때 그 중심에 설 수 있던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고프코어 트렌드는 사실 이제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한 물 갔다고요. 그런데 아직 거리엔 고프코어가 많이 보이는데요. 옷이라는 게 한 번 구매하면 하루 이틀 입고 버리는 품목이 아닌지라 앞으로도 한동안은 계속 보이지 않을까 싶어요. 원래 트렌드라는 게 한순간 등장하고 한순간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요.
아무튼, 오늘은 고프코어 트렌드와 그 중심을 지키는 브랜드 아크테릭스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한 분야에 미친듯이 진심이면 결국 사람들은 알아준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럼 저는 다음 주에 더 재미있는 내용으로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콘텐츠 디렉터 리오
브랜드 사랑방 | 텔유레터 | #27 아크테릭스
텔러비님! 혹시, 등산 좋아하시나요? 그럼 등산복은요? 한동안 길거리에 보면 등산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이 정말 많이 보였어요. 산도 들도 없는 회색빛 도심에서요. 바람막이나 가방은 기본이고 신발, 고글이나 신기하게 생긴 자켓까지 당장 등산하러 가도 손색 없을 차림을 한 채로 돌아다니는 게 유행이었는데요.
바람막이 / ⓒarcteryx
이 트렌드, ‘고프코어’라고 합니다. 2017년, 미국의 여성 온라인 잡지 <더 컷>에서 ‘놈코어의 다음은 고프코어다.’ 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어요. 고프코어는 하이커들이 즐겨 먹는 간식을 뜻하는 “Good OI’ Raisins and Peanuts”의 약자인 GORP와 과하지 않으면서도 편안하게 차려 입은 패션을 뜻하는 ‘놈코어(Nomcore)’의 합성어인데요. ‘과하지 않고 편안한’ 것이 포인트인데요. 한 마디로, 아웃도어 의류의 기능성을 도시 생활에 맞게 변형해서 일상적으로 착용하는 새로운 패션 트렌드였던 거죠.
gorp / ⓒcollectingCandy.com
그런데 말을 거창하게 해서 그렇지 사실 이 트렌드 우리는 익숙합니다. 이미 20년 전부터 한국에서는 비슷한 유행이 있었거든요. 음, 그런데 그때는 ‘고프코어’같은 말을 만들어서 쓰진 않았잖아요? ‘등골브레이커’면 몰라도요. 그러게요. 그때랑 지금이랑 똑같이 아웃도어, 등산복을 입는데, 뭐가 다른 걸까요?
일단 2000년대부터 유행했던 아웃도어 룩은 이름 그대로 정통 ‘아웃도어’제품을 착용했어요. 그러니까 ‘기능’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건데요.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노스페이스 패딩 같은 경우에도 손목에 박음질 되어있던 700, 800으로 급을 나누기도 했고요. 진짜 히말라야 등반에 착용하는 옷이라며 판매 홍보를 하기도 했죠. ‘대장급’이라며 급을 매겨 부모님 등골을 빨아먹기도 했고요.
등골브레이커 / ⓒmedium
그런데 최근 유행했던 고프코어는 아웃도어 룩과 달리 앞서 말했던 ‘놈코어’. 즉, 과하지 않으면서 편안하다는 특색과 함께 이전과 같은 기능성보다는 ‘멋’ 그 자체에 초점이 더 맞춰졌습니다. ‘내 옷이 더 좋네, 네 옷이 더 좋네’보단 누가 더 예쁘게 멋있게 힙하게 입었느냐가 중요하죠.
그리고 이 트렌드의 중심에 서있던 브랜드가 있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장인들이 만든 기술에 미친 브랜드입니다. 기능보단 패션이라면서 장인이라니, 말이 좀 다르죠?
아무튼 이 브랜드, 그럼 어떤 매력이 있길래 하나의 ‘트렌드’ 자체의 대표가 될 수 있었을까요?
글에 앞서, 영상으로 확인하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탄생 스토리
오늘 소개할 브랜드는 1989년 캐나다의 밴쿠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창립자 데이브 레인(Dave Lane)은 클라이머였는데요. 시중에 판매되는 클라이밍 하네스가 아무리 써봐도 별로였던 거예요. 하네스란 안전 장치 장비인데요. 클라이머가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해주는 생존 필수품이죠.
하네스 / ⓒKlein Tools Korea
아무튼 이 장비부터 다른 용품들까지, 데이브 레인은 좀 더 고품질의 제품을 쓰고 싶었는데요. 아무래도 본인이 직접 만드는 게 빠를 것 같아서 브랜드를 만들게 됐다고 해요.
날아오르라 시조새여
우선 브랜드 이름과 로고부터 보자면, 초기 브랜드명은 '락솔리드(Rock Solid)'였어요. 바위, 단단한, 뭐 클라이머랑 잘 어울리는 이름이죠. 그런데, 데이브 레인이 만들고자 한 브랜드는 기존에 없던 아주 혁신적인 고품질 브랜드잖아요? 락솔리드는 이런 혁신적인 이미지는 아닌 것 같아서 이름을 바꾸게 돼요. ‘기존에 없던 진짜 최고의 품질을 가진 브랜드를 만들어보자, 남들 걸어다닐 때 우린 날아보자’라는 마음으로 새로운 이름을 생각하는데요.
ⓒBusiness Insider
아예 최초로 하늘을 날았던 동물인 시조새의 학명인 아키옵테릭스(Archaeopteryx lithographica)에서 따와서 '아크테릭스(Arc'teryx)'로 결정합니다. 이러한 진화,혁신의 상징을 브랜드 이름으로 삼아 버린 거죠. 말 그대로 혁신 그 자체가 되고자 한 거예요.
우린 최고만 만들자
아크테릭스는 시작부터 '기능성과 내구성을 모두 갖춘 최고의 아웃도어 장비를 만들자'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기술에 미친듯이 집착했는데요. 첫 제품은 가장 불만을 가졌던 하네스였어요.
1992년, 아크테릭스는 등반용 베이퍼 하네스를 출시하게 되면서 아웃도어계에 이름을 알리게 돼요. 하네스라는 제품 자체가 평소에는 안 쓰이지만, 떨어지는 그 한 순간을 위한 거잖아요? 그런데 그 떨어질 때마다 너무 아팠다고 해요. 신축성도 별로고 푹신하지도 않아서요. 그래서 열 성형 기법이라는 걸 사용하는데요.
열 성형이 뭐냐면, 열 받으면 부드러워지는 물질들이 있잖아요? 이런 물질을 이용해서 열을 먼저 가하고, 충분히 부드러워졌다 싶으면 냉각시키거나 진공 기술로 형태를 가다듬는 거죠. 원래 다른 하네스들은 이걸 몸이 닿는 부분이나 하중이 가해지는 부분에만 사용했는데, 아크테릭스는 이 과정을 하네스의 모든 부위에 다 적용을 시킨 거예요. 그래서 등반을 하다가 떨어져도 하네스의 모든 부분이 다 부드러워서 이 아크테릭스의 하네스를 처음 쓴 사람들은 ‘꼭 구름 위에 떨어진 것 같았다’고 해요. 그래서 ‘증기’라는 뜻의 베이퍼(vaper)라는 이름이 찰떡이었어요. 나이키의 축구화 베이퍼가 증기처럼 가벼운 점을 내세웠다면, 아크테릭스의 베이퍼는 증기, 구름의 그 폭신한 질감을 내세운 거죠.
기술에 미친 브랜드
기술력, 아크테릭스의 자존심이 아닐까 싶어요. 그만큼 아크테릭스는 기술에 미친 브랜드거든요. 베이퍼 하네스를 출시하면서 아웃도어 장비로 시작한 아크테릭스는 1995년, 이제 의류까지 만들어보기로 해요. 아크테릭스의 의류 라인업. 처음엔 기획부터 출시까지 6개월에서 1년 정도면 될 것 같았다는데요. 실제로는 제품 출시까지 무려 4년이 걸렸습니다. 준비 기간이 예정했던 1년에서 4년으로 늘어난 거죠. 그런데 이 4년 동안에요. 과장 좀 보태서 다른 브랜드 40년치만큼의 개발을 해요.
1996년에는 방수를 위해 업계 최초로 고어텍스 소재를 사용한 옷을 개발하는가 하면,(당시 고어텍스는 의료계에서만 사용됐다고 해요. 고어텍스는 방수 기능뿐만 아니라 내부의 습기를 외부로 배출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어 아웃도어 활동에 최적화된 숨겨진 소재였죠) 아우터의 특성상 지퍼로 물이 들어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YKK와 콜라보로 지퍼 자체를 개발해버리기도 하죠. 다른 브랜드들은 지퍼 덮개를 보통 썼는데, 이 덮개가 무겁기도 하고 거추장스러웠거든요.
지퍼 덮개 / ⓒFruits Family
여기서 끝이 아니라 마이크로 심(Micro Seam)이라는 바느질 공법을 도입하면서 방수 특화 바느질, 봉제파트에서도 기술 개발을 하고요.
아무튼 그렇게 시간을 알차게 보낸 1998년, 아크테릭스는 4년간의 연구개발 끝에 드디어 첫 번째 의류 제품인 알파 SV 자켓을 출시했어요. 이때부터는 혈이 뚫렸다고 해야 할지, 제품들이 쭉쭉 출시됩니다.
그리고 잘되는 브랜드들의 특징이 있죠. 군대로 납품되는 건데요. 물론 전통 브랜드들이 세계대전에 차출된 거지만요. 헌터의 장화, 롤렉스와 해밀턴의 시계부터 스팸, 벤츠, bmw, 칼하트까지 (혹시 관심 있으시면 저희 채널에 업로드 되어 있는 영상 확인해보시면 좋을 것 같고요 아무튼,) 품질 좋기로 유명한 브랜드들은 모두 세계대전에서 활약했습니다. 그러니까 군납이라는 건 품질이 좋다는 가장 큰 증거인데요.
leaf 라인 / ⓒarcteryx
아크테릭스가 2003년 출시한 리프(LEAF) 라인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처음부터 군인과 경찰을 위한 의류로 만들어진 라인인데요. 출시하자마자 미국 해병대의 백팩 20만 개를 납품했죠. 그리고 각종 밀리터리 의류를 제작하기도 했는데, 2023년 1월 20일부터는 경찰과 정부 기관 인증이 있어야만 구매가 가능합니다. 그만큼 성능에 집중했다는 뜻이죠.
고프코어의 중심이 되다
그런데, 고프코어는 기술보다 멋이 먼저라고 했잖아요? 이렇게만 보면 아크테릭스는 완전히 기술 중심적인 브랜드인데 어떻게 고프코어 트렌드의 중심이 될 수 있었을까요?
그 비밀도 사실 기술력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바로 아크테릭스가 개발한 소재 덕분인데요. 아웃도어 제품 입을 때, 이렇게 단단 바스락거리는 재질과 부들부들한 재질이 있다는 거 알고 계시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원래 아웃도어 제품들은 모두 단단한 제품들 뿐이었는데요. 아크테릭스가 최초로 부드러운 소재의 옷을 개발한 브랜드입니다. 그 소재가 바로 ‘소프트쉘’이죠.
하드쉘 / ⓒFjallraven Korea
기존의 뻣뻣하고 튼튼한 기능성 제품들은 험난한 지역에서 입기 위해 만든 옷이었습니다. 확실히 안전하기도 하고 성능도 좋았지만 불편했다고 해요. 그러니까, 완전 산악 전문가가 아니라 일반인들이 취미 생활로 등산할 때 입기에는 너무 과했던 거죠. 그래서 아크테릭스가 개발한 게 바로 ‘소프트쉘’인데요. 비교적 약하고 방수도 잘 안 됐지만, 그만큼 편하고 가벼워서 입문자들이 부담을 덜 수 있었다고 해요.
그리고 고프코어 트렌드에서 중요하다고 했던 점이 있었죠? ‘과하지 않고 편안한’이라고요. 2000년대 아웃도어 룩의 인기는 사실 ‘등산’이 실제로 유행했던 게 한몫했었거든요? 당시 90년대에서 00년대로 넘어오면서 주 5일제 시스템이 사회 전반적으로 확산되고, 직장인들이 야외 활동, 특히 레저활동 등산을 다니는 비율이 높아졌고 당연히 아웃도어 제품 소비량이 늘었어요. 여기서부터 시작된 아웃도어 룩 유행이 퍼졌다고 보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러니 당연히 제품의 기능적인 측면을 많이 볼 수밖에 없던 거죠.
주 5일제 / ⓒ대한민국 대표 공영미디어 KBS
그런데 고프코어의 유행에는 ‘등산’ 꼬리표가 딱히 붙고 있진 않아요. 코로나 전후로 ‘편한 옷’, ‘실용성 높은 옷’에 대한 소비량이 증가하면서 등산복 시장에 열풍이 불었다는 설이 유력하거든요.
그리고 마침 아크테릭스가 부드러운 소재를 만드는 데에도 일가견이 있잖아요? 패션 아이템으로 입기에 딱이었던 거죠. 그래선지 버질 아블로도 2020년 루이비통 파리 패션위크에서 루이비통이 아닌 아크테릭스의 옷을 입기도 했고요.
버질 아블로 / ⓒesquire
그럼 아크테릭스가 편하기만 해서 트렌드의 중심이 됐었냐고요? 그럴 리가요. 편하기만 했다면 버질 아블로가 입었을 리가 없죠. 아크테릭스는 심플한 디자인도 예쁘지만 기술력만큼이나 ‘색’에 미친 브랜드예요. 간단히 레드, 블루 할 수 있는 걸 ‘옥스블러드’, ‘립타이드’같은 특이한 컬러네임을 붙이죠. 실제로 이 색들을 보면 오묘하게 그냥 빨강 파랑이 아닌데요. 아크테릭스는 컬러 전담 팀을 따로 꾸려서 그 팀은 거의 1년 내내 제품을 무슨 색으로 출시할지 고민한다는데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신선한 색을 찾는 데 혈안이라고 해요. 기능성부터 색상까지 모든 부분에 진심이니, 트렌드가 왔을 때 그 중심에 설 수 있던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고프코어 트렌드는 사실 이제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한 물 갔다고요. 그런데 아직 거리엔 고프코어가 많이 보이는데요. 옷이라는 게 한 번 구매하면 하루 이틀 입고 버리는 품목이 아닌지라 앞으로도 한동안은 계속 보이지 않을까 싶어요. 원래 트렌드라는 게 한순간 등장하고 한순간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요.
아무튼, 오늘은 고프코어 트렌드와 그 중심을 지키는 브랜드 아크테릭스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한 분야에 미친듯이 진심이면 결국 사람들은 알아준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럼 저는 다음 주에 더 재미있는 내용으로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콘텐츠 디렉터 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