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의 것들 | 텔유 레터 #30 우유를 어쩌다 마시게 된 걸까?
여러분은 우유 좋아하시나요? 저는 성장기 때를 제외하고는 주로 다른 음식과 같이 먹는 식으로 곁들이곤 합니다. 씨리얼과 함께 먹으면… 아니 저는 사실상 씨리얼은 우유 없이 먹는 것이 불가능하지요🤭. 어쨌거나 시리얼과 우유는 영혼의 단짝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베이커리 영역에서 우유를 포함한 유제품은 필수적입니다. 결론적으로 우유가 우리 주변에서 은근히 많이 들어가고 또 소비되고 있지요! 오늘은 우유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언제부터 우유를 먹기 시작했을까?

소의 젖을 짜는 사람이 그려진 고대 이집트 벽화 / ⓒ 위키미디어
우유가 꽤 전통 있는 음식이라는 것을 알고 계시나요(저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나왔다고 생각했었는데…굵직한 역사가 있더라구요)? 우유는 지금으로부터 약 11,000년 전 서아시아에서 최초로 발견되었습니다. 당시 서아시아에서도 비옥한 지대에 살던 사람들은 가축을 길렀다고 하는데요. 이를 통해 동물의 젖을 주기적으로 먹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키우던 가축은 양, 염소, 소 이런 종류로 맹수들로부터 인간을 지켜줌으로써 자원을 얻는 형태가 9,000~7,000년간까지 이어져오면서 가축의 개념이 정착되었죠. 이 시기에는 생존을 위한 식량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우유는 보조 식량으로 훌륭한 역할을 해냈다고 해요. 당시 우유를 먹는 집단이 생존에 유리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유는 소에서만 나올까요?
왜 다른 동물들 젖은 먹지 않았나


반추 동물들과 위가 4개인 반추동물의 위 모양 / ⓒ 위키피디아
앞서 말한 가축화를 가능케 한 동물들은 반추동물들이었습니다. 이 동물들은 4개의 위를 가지고 있어 삼킨 먹이를 다시 게워내 씹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죠. 반추동물들은 이러한 방법을 통해 먹이를 소화시키기 좋은 형태로 만들면서 최대의 에너지와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이 소화시킬 수 없는 풀을 먹으면서 소화시킬 수 있는 것이죠. 생존을 위해 고기 한 점도 아쉬운 당시에 우리와 같은 음식을 먹는 동물들보다 우리가 먹지 못하는 음식을 주식으로 먹는 동물이 있다? 게다가 보조 식량으로도 유용한 우유를 제공해 준다? 이거 놓칠 수 없잖아요.
자연스레 잡식성인 돼지, 고양이, 개보다 소나 염소 젖을 먹게 되는 이유가 있죠. 이렇게 풀 먹는 동물을 계속 길들여 가며 추후에는 물소, 낙타, 말, 순록 등 다양한 반추동물들이 추가되었습니다. 이들은 풀이 있는 곳을 데리고 다니며 많은 개체를 한 번에 먹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여담으로 가축화가 되기 전의 소들은 젖을 짜는 게 상상이 안 될 정도로 포악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점점 인류에게 길들여지면서 세대가 지날 때마다 뇌의 크기가 작아지면서 지금처럼 온순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우유는 사랑받지 못했다

루이 파스퇴르 / ⓒ 위키피디아
우유는 역사도 깊고 우리에게 좋은 영양분을 주는 보조 식량 겸 음료로도 이용될 만큼 인류에게 유용했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처럼 맛있는 이미지로 자리 잡기까지는 꽤 오래 걸렸습니다. 우유하면 뗄 수 없는 문제가 있죠. 바로 ‘상함, 부패’의 문제였습니다. 지금도 우유는 쉽게 상하는 음료인데요(여름에 우유 먹고 컵 바로 안 헹궈두면 다음날 끔찍한 악취를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일상의 것들 다른 편에도 언급되는 바로 ‘그 시기’ 위생 관념이 없던, 세균의 존재에 대해 모르던 때가 있었죠. 당연하게도 부패의 원리 또한 몰랐던 시기였습니다. 때문에 젖을 짜던 통을 그대로 사용하고 세균과 박테리아가 들끓었죠. 사람들은 우유가 상하기 전에 발효시켜 치즈나 요거트로 만들기 시작했고 음료로서의 우유는 보기 드물뿐더러 위험한 존재가 되어갔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역전시킨 것은 19세기 ‘루이 파스퇴르’의 부패에 대한 실험 덕분이었습니다. 이로서 미생물은 자연 발생이 아닌 외부로부터 오는 것임이 증명되었고 살균법의 개발로 인해 우유의 가장 취약한 부분인 부패를 해결했습니다. 이때부터 살균하고 밀봉한 우유가 나오기 시작했죠. 이후 20세기에 이르러 살균법으로 우유는 영양적인 측면까지 인정받으며 지금과 같이 사랑받게 됩니다!
우리 역사에서의 우유는?

조영석의 '채유, 우유짜기' / ⓒ 공유마당
그렇다면 역시 우리나라의 역사를 빼놓을 수는 없겠죠? 우리 역사에서 우유는 고구려의 시조 주몽이 말에 젖을 먹고 자랐다는 설화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삼국유사 어산불영조에도 용이 소먹이로 사람이 되어 왕에게 유락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를 통해 삼국시대부터 왕들만 우유를 조금씩 접했다고 전해집니다. 고려 시대로 흘러가면 ‘우유소’라는 국가시설이 왕실과 귀족층만 마실 수 있는 우유를 생산했다고 하는데요. 조선시대에서는 이름이 ‘타락색’으로 변경되었지만 이름만 바뀌었을 뿐 귀한 음료임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제대로 된 낙농업 기술이나 살균기술 또한 없었기 때문에 우유가 귀하디 귀했죠. 우리나라에서는 하얀 보약으로 불리며 약으로 사용되었을 정도였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이렇게 귀한, 임금이나 고위 간직들만 마셨던 우유는 언제부터 누구나 마실 수 있는 음료가 될 수 있었을까요? 우리가 현재 마시는 흰 우유는 근대 이후에 등장했습니다. 일본이 서양을 따라 우유를 마시기 시작하면서 우리나라도 그 영향을 받은 것이죠. 그러다 1937년 7월 11일 우리나라 최초의 대량생산 우유공장 ‘경성(당시의 서울)우유동업조합’이 세워지게 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일반인이 우유를 접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죠.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어린이 노약자를 포함한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영양 상태가 극도로 좋지 않았기 때문에 우유가 만병통치약으로 불렸습니다. 하지만 우유의 생산 속도는 이렇게 많은 수요를 쫓아가지 못했죠. 이런 상황으로 인해 1944년 5월부터는 우유를 꼭 필요로 하는 사람은 의사의 진단서를 첨부해 경성부 총력과에 신청서를 내야 하는 ‘우유 등록제’가 실시되기도 했습니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연이어 터진 한국전쟁으로 우유는 계속해서 난항을 겪게 되었습니다. 전쟁 이후에는 우유를 담을 병조차 구하지 못해 미군 부대의 빈 맥주병을 세척해 살균하여 사용했다고 하네요. 그러던 1962년 정부는 대대적으로 우유를 마시고 영양을 보충할 수 있는 낙농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고 이때 서독으로부터 젖소 200마리를 비롯해서 우유를 생산하기 위한 여러 지원을 받게 됩니다. 이 영향으로 국내엔 여러 우유 회사들이 생겨나고 침체되어 있던 시장이 활성화되는데 이 중에는 ‘바나나맛 우유’로 유명한 ‘빙그레’도 있었죠.
우리나라는 우유 산업은 불과 30여 년만에 무려 2천 배 가까이 증가한, 매년 200만 톤 이상의 양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정착을 시작한 대한민국의 우유는 현재는 세계 어느 우유 시장에 내놓아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우수한 품질의 원유를 자랑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점을 보면 또 한 번 한국인의 의지를 느낄 수 있는 것 같네요.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일상의 것들 | 텔유 레터 #30 우유를 어쩌다 마시게 된 걸까?
여러분은 우유 좋아하시나요? 저는 성장기 때를 제외하고는 주로 다른 음식과 같이 먹는 식으로 곁들이곤 합니다. 씨리얼과 함께 먹으면… 아니 저는 사실상 씨리얼은 우유 없이 먹는 것이 불가능하지요🤭. 어쨌거나 시리얼과 우유는 영혼의 단짝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베이커리 영역에서 우유를 포함한 유제품은 필수적입니다. 결론적으로 우유가 우리 주변에서 은근히 많이 들어가고 또 소비되고 있지요! 오늘은 우유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언제부터 우유를 먹기 시작했을까?
소의 젖을 짜는 사람이 그려진 고대 이집트 벽화 / ⓒ 위키미디어
우유가 꽤 전통 있는 음식이라는 것을 알고 계시나요(저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나왔다고 생각했었는데…굵직한 역사가 있더라구요)? 우유는 지금으로부터 약 11,000년 전 서아시아에서 최초로 발견되었습니다. 당시 서아시아에서도 비옥한 지대에 살던 사람들은 가축을 길렀다고 하는데요. 이를 통해 동물의 젖을 주기적으로 먹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키우던 가축은 양, 염소, 소 이런 종류로 맹수들로부터 인간을 지켜줌으로써 자원을 얻는 형태가 9,000~7,000년간까지 이어져오면서 가축의 개념이 정착되었죠. 이 시기에는 생존을 위한 식량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우유는 보조 식량으로 훌륭한 역할을 해냈다고 해요. 당시 우유를 먹는 집단이 생존에 유리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유는 소에서만 나올까요?
왜 다른 동물들 젖은 먹지 않았나
반추 동물들과 위가 4개인 반추동물의 위 모양 / ⓒ 위키피디아
앞서 말한 가축화를 가능케 한 동물들은 반추동물들이었습니다. 이 동물들은 4개의 위를 가지고 있어 삼킨 먹이를 다시 게워내 씹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죠. 반추동물들은 이러한 방법을 통해 먹이를 소화시키기 좋은 형태로 만들면서 최대의 에너지와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이 소화시킬 수 없는 풀을 먹으면서 소화시킬 수 있는 것이죠. 생존을 위해 고기 한 점도 아쉬운 당시에 우리와 같은 음식을 먹는 동물들보다 우리가 먹지 못하는 음식을 주식으로 먹는 동물이 있다? 게다가 보조 식량으로도 유용한 우유를 제공해 준다? 이거 놓칠 수 없잖아요.
자연스레 잡식성인 돼지, 고양이, 개보다 소나 염소 젖을 먹게 되는 이유가 있죠. 이렇게 풀 먹는 동물을 계속 길들여 가며 추후에는 물소, 낙타, 말, 순록 등 다양한 반추동물들이 추가되었습니다. 이들은 풀이 있는 곳을 데리고 다니며 많은 개체를 한 번에 먹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여담으로 가축화가 되기 전의 소들은 젖을 짜는 게 상상이 안 될 정도로 포악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점점 인류에게 길들여지면서 세대가 지날 때마다 뇌의 크기가 작아지면서 지금처럼 온순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우유는 사랑받지 못했다
루이 파스퇴르 / ⓒ 위키피디아
우유는 역사도 깊고 우리에게 좋은 영양분을 주는 보조 식량 겸 음료로도 이용될 만큼 인류에게 유용했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처럼 맛있는 이미지로 자리 잡기까지는 꽤 오래 걸렸습니다. 우유하면 뗄 수 없는 문제가 있죠. 바로 ‘상함, 부패’의 문제였습니다. 지금도 우유는 쉽게 상하는 음료인데요(여름에 우유 먹고 컵 바로 안 헹궈두면 다음날 끔찍한 악취를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일상의 것들 다른 편에도 언급되는 바로 ‘그 시기’ 위생 관념이 없던, 세균의 존재에 대해 모르던 때가 있었죠. 당연하게도 부패의 원리 또한 몰랐던 시기였습니다. 때문에 젖을 짜던 통을 그대로 사용하고 세균과 박테리아가 들끓었죠. 사람들은 우유가 상하기 전에 발효시켜 치즈나 요거트로 만들기 시작했고 음료로서의 우유는 보기 드물뿐더러 위험한 존재가 되어갔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역전시킨 것은 19세기 ‘루이 파스퇴르’의 부패에 대한 실험 덕분이었습니다. 이로서 미생물은 자연 발생이 아닌 외부로부터 오는 것임이 증명되었고 살균법의 개발로 인해 우유의 가장 취약한 부분인 부패를 해결했습니다. 이때부터 살균하고 밀봉한 우유가 나오기 시작했죠. 이후 20세기에 이르러 살균법으로 우유는 영양적인 측면까지 인정받으며 지금과 같이 사랑받게 됩니다!
우리 역사에서의 우유는?
조영석의 '채유, 우유짜기' / ⓒ 공유마당
그렇다면 역시 우리나라의 역사를 빼놓을 수는 없겠죠? 우리 역사에서 우유는 고구려의 시조 주몽이 말에 젖을 먹고 자랐다는 설화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삼국유사 어산불영조에도 용이 소먹이로 사람이 되어 왕에게 유락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를 통해 삼국시대부터 왕들만 우유를 조금씩 접했다고 전해집니다. 고려 시대로 흘러가면 ‘우유소’라는 국가시설이 왕실과 귀족층만 마실 수 있는 우유를 생산했다고 하는데요. 조선시대에서는 이름이 ‘타락색’으로 변경되었지만 이름만 바뀌었을 뿐 귀한 음료임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제대로 된 낙농업 기술이나 살균기술 또한 없었기 때문에 우유가 귀하디 귀했죠. 우리나라에서는 하얀 보약으로 불리며 약으로 사용되었을 정도였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이렇게 귀한, 임금이나 고위 간직들만 마셨던 우유는 언제부터 누구나 마실 수 있는 음료가 될 수 있었을까요? 우리가 현재 마시는 흰 우유는 근대 이후에 등장했습니다. 일본이 서양을 따라 우유를 마시기 시작하면서 우리나라도 그 영향을 받은 것이죠. 그러다 1937년 7월 11일 우리나라 최초의 대량생산 우유공장 ‘경성(당시의 서울)우유동업조합’이 세워지게 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일반인이 우유를 접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죠.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어린이 노약자를 포함한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영양 상태가 극도로 좋지 않았기 때문에 우유가 만병통치약으로 불렸습니다. 하지만 우유의 생산 속도는 이렇게 많은 수요를 쫓아가지 못했죠. 이런 상황으로 인해 1944년 5월부터는 우유를 꼭 필요로 하는 사람은 의사의 진단서를 첨부해 경성부 총력과에 신청서를 내야 하는 ‘우유 등록제’가 실시되기도 했습니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연이어 터진 한국전쟁으로 우유는 계속해서 난항을 겪게 되었습니다. 전쟁 이후에는 우유를 담을 병조차 구하지 못해 미군 부대의 빈 맥주병을 세척해 살균하여 사용했다고 하네요. 그러던 1962년 정부는 대대적으로 우유를 마시고 영양을 보충할 수 있는 낙농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고 이때 서독으로부터 젖소 200마리를 비롯해서 우유를 생산하기 위한 여러 지원을 받게 됩니다. 이 영향으로 국내엔 여러 우유 회사들이 생겨나고 침체되어 있던 시장이 활성화되는데 이 중에는 ‘바나나맛 우유’로 유명한 ‘빙그레’도 있었죠.
우리나라는 우유 산업은 불과 30여 년만에 무려 2천 배 가까이 증가한, 매년 200만 톤 이상의 양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정착을 시작한 대한민국의 우유는 현재는 세계 어느 우유 시장에 내놓아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우수한 품질의 원유를 자랑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점을 보면 또 한 번 한국인의 의지를 느낄 수 있는 것 같네요.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